지난 9월 말쯤이었다. 동·서도에 사는 독도리 사람들이 오랜만에 서도에 모여 마을 잔치를 벌였다. 동도 등대의 등대장과 요원 둘, 독도경비대의 대장과 부대장, 통신반장이 서도로 건너오면 '집합 끝'이다. 독도경비대원을 제외한 이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여는 사람들.
박영식 등대장은 울릉도에서 김성도(69) 이장과 9년을 한 집에 살아 정이 서로 각별하다. 무침회, 참소라 안주에 플라스틱 소주병이 몇 병 비워지고 모두들 기분 좋게 한잔 되었을 때다. 박 등대장이 옆에 앉은 김 이장·김신열(71) 내외분에게 웃으며 물었다.
"형님. 똑바로 이야기해 보소. 처음 형님하고 형수님 만날 때 누가 먼저 찝쩍거렸소?"
"야 야. 그걸 말이라고 하나. 나 그때 멍텅구리배(해녀작업선) 끌고 다닐 때, 한창 잘나가던 때 아니었나. 신열이쯤이야 내 눈에나 찼겠나?" "하이고, 하이고. 저런다. 저래. 말이면 단 줄 알고. 김성도 잘나갔다고? 난 그때 김성도는 쳐다도 안 봤네요." "희한하네. 그런데 어째 같이 만나 사요. 마, 마 바른말 하소."
김 이장이 빙긋이 웃으며 이야기한다.
"어, 그게 그랬어. 그때 봄날이라 하루는 일을 쉬고 해녀들이랑 전부 놀러 갔지. 근데 저 할망구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왔어. 물질할 때는 몰랐는데 좀 달라 보이데. 선장한테 잘 보이려고 꼬리를 친 거지."
"그걸 말이라고 믿나? 나 그때 제주 해녀 중에 최고였거든. 어지간한 해녀 세 사람 몫을 했어. 해마다 연말 결산하면 1등은 놓치지 않았다고. 그렇기 때문에 멍텅구리배 선장이고 수협 사람들이고 김신열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서로 데리고 가려고 했지. 내가 자기한테 잘 보이기는 뭘 잘 보여.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하소."
"그럼 형수님이 어째 넘어갔소?" "그때는 제주에서 해녀들이 물질하러 오면 20, 30명씩 와. 그래 울릉도 방을 두어 칸 얻어놓고 같이 생활하거든. 비좁고 많이 불편하지. 근데 그때 선장이 자기 집 빈방에 후배 둘이랑 같이 와서 자라고 그러데. 내가 일을 그만큼 하니 대우해준다 싶었지. 그래 한잠 실컷 자고 나니 옆에 있어야 할 후배 둘이 없어. 저 인간이 빼돌린 거지. 왜 내 말이 틀렸소?"
김신열씨가 대거리를 하니까 머쓱해진 김 이장이 애매한 웃음을 흘리며 술잔을 기울였다.
"뭐 그럼 전부터 둘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맞췄구만요. 그러니 연분이 났지."
김 이장이 독도에 들어온 것은 군대 제대 이후 독도 첫 주민 고 최종덕씨와 함께 일하면서부터다. 당시에는 제주도 해녀를 모집해서 배 몇 대에 나눠 타고 독도로 들어가 한 달씩 철에 따라 소라, 전복을 잡고 미역, 김도 땄다. 최종덕씨는 독도 전체 사업을 경영하는 '사장님'이었고 김 이장은 선장이었다.
멍텅구리배 선장은 물 밑 사정을 잘 알아 해녀들을 물 밑으로 내려보내고 작업을 지원한다. 김 이장은 '물보기(물밑 지형도)'도 잘할뿐더러 '쌍줄 잡기'도 능수능란했다. 쌍줄 잡기는 두 명의 해녀가 물 밑에서 함께 작업할 때 배에서 공기호스 두 가닥을 같이 조정하는 것이다. 자칫 작업 중 두 가닥 호스가 꼬이면 해녀의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때문에 외줄이 원칙이지만 작업 능률을 위해 쌍줄을 내리는 경우도 많다.
김씨는 친정이 제주도 한림이다. 어릴 적부터 종일토록 한림 앞바다 고운 모래사장에서 자맥질하다 보니 자연스레 물질을 하게 되었다. 집안에서는 물질하는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한테 농사일 안 하고 물질한다고 혼나고 쫓겨나다시피 했다. 그러나 물에 들어가면 편안하고 남들보다 월등히 깊이, 곱절이나 오래 물속에 들어가 있을 수 있었다. 해서 처녀시절 동해안 기장, 감포 등지로 물질 나서면 항상 옆 동네 단짝 친구와 1, 2등을 다투었다.
김씨가 처음 독도에 들어온 것은 울릉도 어촌계에서 제주도 해녀를 부르면서부터이다. 그때 나이가 스물아홉. 김씨는 그 이후 40여년을 명실상부 독도의 안주인 노릇을 하게 된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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