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영남은 일찍이 '물레방아 인생'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세상만사 둥글둥글 호박 같은 세상 돌고 돌아 정처없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기웃기웃 구경이나 하면서 밤이면 이슬에 젖는 나는야 떠돌이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이라고. 세상에는 돌고 도는 것 천지다. 자동차 바퀴도, 회전문도, 시계침도 돈다. 달력도 한 장 한 장 떨어지면 어느새 다시 1월이 된다. 생활 속 돌고 도는 세상에 숨겨진 알쏭달쏭한 세계를 살펴본다.
◆왼쪽으로 도는 세상 육상 트랙
2008 베이징올림픽 최고의 스타인 자메이카 육상 선수 우사인 볼트. 그는 100m와 200m, 400m계주 등에서 금메달을 따 육상 3관왕이 됐다. 모두 신기록이다. 그런데 볼트가 똑같은 조건으로 제1회 아테네올림픽에서 뛰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왜 그럴까? 비밀은 바로 트랙 방향에 있다.
현재 육상경기는 반드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달리게 돼 있다. 국제육상연맹이 1913년 제2차 총회에서 '모든 트랙 경기의 달리는 방향은 왼쪽'으로 규정했기 때문. 규정이 생기기 전에는 특별히 정해진 트랙 방향이 없었다. 개최국 규정이나 관습을 따르다 보니 시계 방향으로 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1896년 제1회와 1906년 제2회 아테네올림픽에서도 육상 선수들은 시계 방향으로 트랙을 돌았다. 그러나 선수들은 "시계 방향 질주가 어색하고 불편하며 기록도 잘 안 나온다"고 불평했다. 결국, 세계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오른손잡이에게 편한 방향으로 규정이 정해졌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트랙의 곡선 주로를 달릴 때는 곡선 안쪽으로 몸을 기울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쪽 팔다리를 작게 움직이고 바깥쪽 팔다리를 크게 움직여야 한다. 이는 바깥쪽 팔다리가 발달돼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인체역학적으로도 '오른손잡이는 왼쪽으로 도는 것이 속도 유지에 낫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이스 스케이팅이나 사이클은 물론이고 경마 트랙 또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도록 설계된다. 야구에서도 이 같은 이유로 주자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달린다. '인간의 심장이 왼쪽에 있기 때문'이라며 생리학적으로 설명하는 견해도 있다. 오른쪽(시계 방향)으로 트랙을 돌 경우 원심력 때문에 심장에 무리한 힘이 가해질 수 있다는 의견이다.
자동차 경주나 오토바이 경주는 이와 반대로 주로 시계 방향으로 돈다. 이에 대해 혹자는 '일정한 원을 돌 때는 반시계 방향, 형식이 없는 코스를 돌 땐 방향에 상관없다'고 설명한다. 미국의 나스카 경주의 경우 일정한 트랙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문명 발달이 가른 시계 방향
시계 방향은 왜 시계 방향일까? 우문 같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시계 수리사인 정윤호 명장의 시계 이야기를 보면 '기원전 600년경에 발명된 해시계의 영향에 의해서라는 결론이 오래전에 시계학자들의 연구에서 밝혀졌다'고 한다. 기계적인 시계가 발명되기 전까지 인류가 가장 신뢰했던 시계는 해시계였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행한다. 따라서 해시계의 그림자는 당연히 시계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를 토대로 시계판을 제작하다 보니 시곗바늘이 오른쪽으로 움직이게 됐다는 해석. 그렇다면, 남반구에선 해시계 그림자는 북반구와 반대로 움직일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정 명장은 이와 관련해 '인류의 모든 문명이 지구의 북반구에서 발달하였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남반구에서 문명국가가 계속 번성했다면 우리가 말하는 시계 방향이 현재와 반대로 됐을 수도 있다는 것. 실제로 중세시대 선원들은 남·북반구 모두 사용이 가능하도록 시계판의 표시가 양방향으로 된 해시계를 썼다. 시간 표시가 좌측 방향으로 표시된 남반구에서 사용된 해시계도 있다. 바늘이 왼쪽으로 도는 '거꾸로 가는 시계'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동안 여러 번 상품화됐지만 크게 인기를 못 끌었을 뿐이다.
◆변기 속 소용돌이에 숨겨진 비밀
변기 물을 내리면 시계 방향으로 돌며 물이 빠진다. 욕조의 물을 뺄 때도 같은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여기에는 '코리올리 힘(전향력)'이 작용한다. 전향력이란 회전하는 물체 위에서 보이는 가상적인 힘으로, 원심력과 같은 것이다. 북반구에서 태풍의 회전 방향이 오른쪽인 것도 전향력에 의한 현상이다. 변기나 욕조 물이 빠질 때에도 전향력이 작용하면서 북반구에서는 오른쪽으로, 남반구에서는 왼쪽으로 물이 돈다. 그러나 전향력이 굉장히 규모가 큰 바람이나 태풍 등에 영향을 미칠 뿐 욕조·변기의 작은 소용돌이 방향은 변기 모양과 구조, 물과 공기의 역학적인 요소 등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 견해도 있다.
나사나 볼트도 오른쪽으로 돌려야 잠긴다. 그러나 선풍기 날개, 자전거 왼쪽 페달 등 특별한 경우에 왼쪽 방향으로 잠기는 볼트를 쓰기도 한다. 이를 구분해 전자를 '오른나사', 후자를 '왼나사'로 부른다. 그 방향의 기원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없지만, 오른손잡이가 돌리기 편한 방향으로 홈을 팠을 거란 해석이 설득력 있다.
종교 의식과 관련된 회전에 관해서도 의견은 갈린다. 이슬람 종교 의식 중의 하나로 추는 '수피(Sufi) 춤'은 보통 음악에 맞추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 그러나 이게 불편한 사람은 시계 방향으로 돌아도 된다. 불교 의식인 탑돌이도 '오른쪽으로 돌아야 한다'와 '왼쪽으로 돌아야 한다'는 주장이 다르다. 전자의 경우 '존경하는 사람에겐 그 주위를 오른쪽으로 홀수 번 도는 인도의 인사법을 따랐다'고 한다. 반면 왼쪽으로 도는 것이 옳다는 이들은 '나사처럼 오른쪽으로 조여든 중생의 한을 왼쪽으로 돌면서 풀어준다는 의미가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신과 교접하는 무당의 경우 맴돌이는 항상 왼쪽(시계 반대 방향)이다. 우주를 나타내는 삼태극의 방향에 맞춰 왼쪽으로 돌아야 우주의 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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