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자린고비와 구두쇠

불황의 그늘이 나날이 짙어지고 있다. 가계와 기업은 씀씀이를 줄이며, 마른 수건도 다시 쥐어짤 태세다. 애옥살이 살림에 몸부림치는 서민들의 모습은 눈물겹다.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 그릇을 비웠다는 자린고비에 뒤지지 않는다.

자린고비는 장독에 빠진 날파리 다리에 묻은 간장이 아까워 십 리를 쫓을 정도로 지독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린고비란 말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충주에 살던 부자가 제사 때 쓰는 紙榜(지방)의 종이가 아까워 불태우지 않고 접어 두었다가 두고두고 쓰는 바람에 지방 속의 '考(고)'자와 '女比(비)'자가 때에 절었다 해서 '절은 고비'라는 말이 나왔고, 이것이 '자린고비'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또 조선 숙종 때의 실존 인물 '조륵'이 자린고비라는 설도 유력하다. 충북 음성이 고향인 조륵은 평생 부지런하게 일하고 절약하여 만석꾼 살림을 일궜다. 조륵이 회갑을 맞을 당시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 심한 가뭄이 들자, 그는 재산을 풀어 기근을 구제했다. 이에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조륵의 공을 기려 '慈仁考碑(자인고비)'라는 송덕비를 세웠고, 자인고비가 자린고비가 됐다는 주장이다.

자린고비는 '다라울 정도로 인색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의돼 있다. 구두쇠와 비슷한 의미다. 그러나 자린고비는 구두쇠와 다르다. 우리 속담과 설화에 등장하는 자린고비는 모은 재산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썼다. 진정한 절약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한 사람인 것이다. 따라서 자린고비는 자신에게 철저하고 인색한 반면, 구두쇠는 남에게 인색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대구 인근 군위군의 자린고비들이 대형 사고(?)를 쳤다. 지난 1999년 박영언 군수 주도로 창립된 사단법인 '군위군교육발전위원회'가 설립 만 9년 만에 교육발전기금을 100억 원이나 모았다. 전 군민과 출향인들이 길흉사의 축의금'조의금까지 모은 성과다. 군위군은 이 기금으로 지역 내 중'고교생의 96% 이상에게 장학 혜택을 주었다. 이로 인해 우수학생들이 군위지역 학교로 몰리면서 대학진학률도 1998년 18%에서 2008년 84%로 수직 상승했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복지시설마다 찬바람이 분다고 한다. 연말을 맞아 구두쇠가 아니라 자린고비가 돼 어려운 이웃들을 한번쯤 돌아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조영창 북부본부장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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