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다. 연말 송년회다 망년회다 각종 모임과 행사는 왜 그리 많은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이때 우리를 못살게 구는 '악당'이 있으니 바로 '술'이다. 안 마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연일 '부어라 마셔라'할 수도 없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당'을 자처하며 당당하게 술과 맞서는 사람이 있다. 술,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사람, 연일 과음으로 피곤하긴 하지만 견딜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 과음 후 너무 힘들어 '다시는 술 안 마신다'고 다짐하고도 그날 저녁 다시 술자리를 찾는 사람….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시라. 술과 대적하는 동안 알코올 중독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을···.
◆알코올 중독이란
알코올 중독은 흔히 술 때문에 일상 생활이나 사회·직업적 기능에 문제가 지속되는 경우로, 크게 알코올 남용과 알코올 의존으로 나뉜다. 알코올 남용은 말 그대로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셔 직장이나 학교, 가정 등에서 반복적으로 문제가 생기거나 신체 상해, 대인 관계, 나아가 법적 문제까지 발생했는 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음주를 하는 경우다. 알코올 의존은 여기에 술에 대한 내성까지 생겨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셔야 하고 음주를 중단하면 금단 증상이 나타나 스스로 금주를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술을 마시지 않을 경우 음주에 대한 욕구나 갈망이 나타나거나 손 떨림, 식은 땀, 불안, 초조, 심지어 환각 증상을 보인다면 알코올 의존이 생긴 중독 상태로 보면 된다. 알코올 금단 증상은 오랫동안 많은 양의 술을 마시다 양을 줄인 지 12시간 이상 경과한 뒤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알코올 중독 진행 단계
초기 알코올 중독은 스스로 알아채기 쉽지 않다. 가끔씩 또는 자주 술로 해방감이나 즐거움을 느끼면서 음주를 지속하다 점차 음주량이 늘어 내성이 생기는 단계까지 발전하게 된다. 알코올 중독이 서서히 진행되면서 기억상실의 횟수가 늘어나고 음주에 대한 죄책감도 생겨 혼자 몰래 마시거나 다른 사람이나 가족에게 술 마시는 것을 숨기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중독의 위기 단계로 접어드는 데 음주에 대한 조절능력을 잃게 돼 모든 일상 생활이 음주와 연관되고 음주에 대한 변명과 부정, 심지어 거짓말까지 하게 된다. 또 음주 상태에서 주사가 빈번히 나타나고 공격적인 말과 행동으로 가족 및 친구 등 대인 관계와 사회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심지어 직장이나 학교, 가정 생활, 외부 활동에 흥미를 잃고 가족이나 친구 등을 피하면서 고립돼 다시 술을 마시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알코올 중독이 더욱 심해지면 해장술을 비롯, 거의 하루종일 술을 마시게 되고 성적 욕구도 감퇴된다. 또 가족,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거나 자신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피해 망상에도 사로잡히게 된다. 만성적 단계에 들어서면 기억력, 집중력 등 인지기능뿐 아니라 사고 및 인격 장애가 나타나고 환각, 망상 등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하다 결국 사망에까지 이르게 된다.
◆알코올 중독의 증상
음주가 지속되면서 점차 업무 능률이 떨어지고, 일상 습관에 변화가 일어나며 생산성 감퇴, 지각이나 무단 결근·결석, 쉽게 변동되는 기분, 성격 변화 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알코올 중독 초기 부터 나타날 수 있는 일반적인 증상으로는 먼저 '기억 상실'을 들 수 있다. 흔히 '필름이 끊긴다'는 말로 많이 사용되는 데 음주 후의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경우다. 음주자의 35% 정도가 경험할 정도로 흔한 증상이다. 또 수면에도 변화가 나타나는데, 깊은 잠이 부족해지고 일찍 깨게 되며 코를 골게 된다. 수면 중 호흡이 일시적으로 끊기는 수면무호흡증후군이 있는 경우 증상이 더욱 악화된다. 물론 기억 상실이나 수면 변화는 일반 음주자에게도 나타나지만 알코올 중독의 경우 더 심해지고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와 함께 뇌기능에 문제가 생겨 판단력이나 균형 감각, 운동 협응 능력에 서서히 장애가 발생하게 돼 운전이나 기계 조작을 하다 사고가 일어나거나 넘어져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잦아진다.
◆알코올 중독과 동반되는 질환
지속적인 음주로 뇌기능 손상이 더 진행되면 안면근육이 마비되고 신체 운동 조화가 깨지며 안구가 미세하게 떨리는 안구진탕증, 기억력 장애 등 증상을 보이는 베르니케증후군 및 코르사코프증후군이라는 질환이 발생하게 된다. 또 술로 인해 뇌에 필요한 비타민 중 티아민이라는 성분의 만성적 결핍이 발생해 손이나 발 등이 저리거나 아픈 말초신경병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알코올 중독자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최근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력 장애를 넘어 점점 오래된 장기 기억에도 장애가 생기게 되고 결국 알코올성 치매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술과 관련된 질환으로는 잘 알려진 것처럼 간염 등 간 질환과 위염, 위궤양 등 위장관계 장애, 췌장염, 당 대사장애, 심근병증, 혈소판 감소, 빈혈, 근육병증, 성기능장애 등이 합병증으로 나타나고, 구강·식도·위장관·췌장 등에 암을 일으키기도 한다. 알코올 중독 치료에 나설 경우 첫 1년 단주 성공 여부가 이후의 지속적인 단주 유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집중적이고 적극적인 치료 의지 및 노력이 필요하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도움말·구본훈 영남대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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