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투잡'해도 겨우 밥벌이…서민들 "내일은 없다"

[불황에 멍든 서민] <상>부지런한 '근로 빈곤층'

대리운전 기사 박모(33)씨는 요즘 '죽을 때까지 가난을 벗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고 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대리기사로 투잡(two job)을 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4년제 대학 졸업 후 3년을 백수로 전전하던 그는 2년 전부터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당뇨합병증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어머니의 약값이라도 보태야 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버지와 내가 버는 돈까지 합쳐야 월 180만원 남짓"이라며 "이 돈으로 어머니 병원비는커녕 빚만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라 다시 취업준비에 뛰어들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내일 없는 부지런한 가난뱅이=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 빈곤층'(워킹푸어·Working Poor)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 근로빈곤층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다 보니 아무리 일해도 인생은 그 자리를 맴돌 뿐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유로운 삶은커녕 저축이나 노후준비 등의 '미래'는 아예 계산해 볼 틈조차 없다.

대구의 경우 변변한 직장이 드물고 비정규직 비율이 타 도시에 비해 높은데다 만성적인 경기침체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서민들의 아우성이 높다.

한때 112㎡의 아파트에 살았던 김모(40·여)씨. 평범한 가정주부이던 김씨의 삶은 5년 전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내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파트는 대출금을 상환할 능력이 없어 경매로 넘어갔다. 김씨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딴 후 일을 시작했지만 수입은 월 93만원. 월 15만원의 집세와 식비, 난방비, 통신비, 자녀 학비 등을 빼고 나면 김씨의 수중에 남는 돈은 한 푼도 없다. 김씨는 "저축은커녕 중2인 아들이 병원이라도 드나들거나 옷 한벌 장만하게 되면 카드 대출로 근근이 메우고 있다"고 했다.

'중산층'의 상당수도 속을 들여다보면 이런 '근로 빈곤층'에 비해 크게 나을 바가 없다. 가계지출은 늘고 소득은 줄다 보니 마이너스통장이나 카드대출로 그 틈을 메우는 '무늬만 중산층'인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뜻하지 않은 위기가 닥치면 이들은 곧장 빈곤층으로 추락하고 만다.

400만원 가까운 월급을 받는 홑벌이 가정의 가장 조모(44)씨는 "아이들의 사교육비를 뭉텅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휴대 전화비, 차량 유지비 등 기본 지출이 커지고 있지만 월급은 2년째 그대로"라면서 "3천만원 한도의 마이너스 통장이 바닥을 드러낸 상태"라고 했다. 아파트 두 채를 가져 직장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이모(45)씨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씨는 "대출금 이자만으로 아내 월급이 다 들어가고 340만원 정도의 월급으로 부모님 모시고 두 자녀와 생활하고 있다"며 "앞으로 아이들이 커갈수록 늘어나는 생활비 부담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워킹푸어, 얼마나 되나=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하지만 노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인구 1천600만명 중 309만명이 월 소득 88만원에 못 미치는 '근로 빈곤층'이다. 이런 빈곤층은 갈수록 느는 반면 중산층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15년 전인 1992년 7.7%였던 빈곤층은 2007년 14.4%까지 증가했지만 1992년 75.2%였던 중산층 비중은 지난해 62.7%까지 떨어졌다.

대구시 종합고용지원센터 관계자는 "앞으로 경제 위기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여 상시적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밝혔다.

사회 진출을 막 시작한 젊은이들의 현실도 그다지 좋지 않다.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 인'이 20, 30대 직장인 91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표 참조)에 따르면 20, 30대 직장인의 65.2%가 '나는 워킹푸어에 속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연봉이 적어서'가 37.7%로 1위를 차지했으며 ▷'생활비가 빠듯해서'(15.9%) ▷'저축을 거의 못해서'(11.2%) ▷'고용이 불안해서'(8.7%)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아서'(8.2%)▷'부유층과 차이가 너무 커서'(5.5%) ▷'가난이 대물림돼서'(3.5%) 순으로 나타났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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