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소비자 파워 제대로 키워야

日소비자 불량식품 철저히 리콜/우리 저품질 정치도 응징 나서야

모레(12월 3일)는 소비자의 날이다.

50년 전만 해도 국산품을 소비해야 애국자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비도 글로벌 시대가 됐다.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 상품만 우리끼리 소모하고 살며, 일제나 미제 같은 남의 나라 물품을사면 애국심 없는 매국노인 양 눈총 주던 낡은 시대는 사라졌다는 얘기다.

그런 변화는 달포 전 미국의 투자분석가 마크 파버 (Marc Faber) 박사의 소비경제분석이라는 짤막하고도 의미 깊은 보고서에서도 지적되고 있다. 미 연방 정부가 미국민들에게 600달러씩의 환불금을 보내 주었을 때 그 600달러가 어떻게 쓰여지느냐는 소비 패턴을 풀이한 보고서다.

'우리(미국인)가 그 돈을 월마트에서 쓰면 그 돈은 바로 중국으로 갑니다. 우리가 그 돈을 기름 구입에 쓰면 그 돈은 금세 중동으로 갑니다. 우리가 그 돈을 컴퓨터 사는 데 쓰면 그 돈은 인도로 갑니다. 우리가 그 돈을 靑果物(청과물) 사 먹는 데 쓰면 멕시코나 온두라스, 과테말라로 갑니다. 우리가 그 돈을 자동차 사는 데 쓰면 거의 다 일본'독일'한국으로 가고 에이즈 퇴치운동에 쓰면 그 돈은 아프리카로 갑니다. 우리가 그 돈을 별 쓸모없는 잡동사니 소품들을 사면 돈은 즉시 타이완으로 가며 한푼도 미국의 소비 경제에는 도움이 안 됩니다. 유일하게 그 돈을 우리나라(미국)에 남아 떨어지게 하는 방법은 아직 미국에서 생산하는 술과 유흥가 여자들에게 쓰는 것입니다.'

조금은 자조적인 비유지만 당사국인 미국뿐 아니라 21세기 지구촌 거의 모든 나라의 소비패턴은 마크 박사의 비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먹을거리와 의류, 생활용품까지 샀다 하면 그 돈이 즉각 중국, 일본, 중동, EU국가로 넘어가는 우리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

올 소비자의 날에는 한번쯤 그런 먹고, 마시고, 쓰는 소비材(재)뿐만 아니라 정치 행위에 대한 소비의식의 변화와 强化(강화)도 모색해 보자.

이웃 일본의 경우 소비자의 호주머니를 부당하게 털어가는 불량'유해 식품, 상품에 대해서는 조직적이고 철저한 不買(불매) 캠페인을 오래전부터 벌여왔다. 예를 들면 매주 금요일 '사서는 안 되는 것'이란 책자를 발행해 매일 매일 쏟아지는 신상품을 분석, 유해 여부를 가려 공개하는 것도 한 예다. "지금부터 소개 드리는 상품은 주간 금요일판 '사서는 안되는 것'에서 선정한 권할 수 없는 상품들입니다. ○○크림빵, △김밥, ××라면, ○○껌, ○○우유, △△생수, ××샴푸, ○○크림, ○○파스, ○○면도기, ××모기향…"

대충 그런 내용이다. 물론 책값은 유료 판매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돈을 주고도 '사서는 안 되는 것'이란 책을 사 본다. 모르고 쓰거나 먹었다가 당하는 불량품의 피해에 비하면 천 엔의 책값은 비싼 게 아니란 인식 때문이다.

그런 깨어있는 소비자의 의식과 책을 내가며 불량상품을 고발하는 소비자 보호 중심의 정보공유 시스템이 전 세계인에게 '일본 식음료와 일본 기계제품은 믿을 수 있다'는 인식과 신뢰를 구축해 왔다. 양계업자가 특별한 원가 상승요인 없이 갑자기 달걀 값을 많이 올리면 전국 주부들이 반짝 피켓시위 대신 슈퍼에 몇 주째 쌓인 달걀이 썩을 때까지 계란 안 사기 운동으로 단결, 끝내 값을 내리도록 압박하는 소비의식이 바로 일본식 소비자 파워다.

그런 제대로 된 소비자 파워가 만들어지려면 먼저 소비자가 깨어 있어야 한다. 상품뿐만이 아니다. 참정권과 통치행위에 대한 비판과 감시도 일종의 소비행위라 본다면 소비자 입장인 국민들로서는 민권이라는 '정치 소비자'로서의 파워를 제대로 행사할 필요가 있다.

지난날 우리는 선거만 끝나면 법안처리 등은 뒷전인 채 政爭(정쟁)과 비리에 오염되는 함량미달의 低(저)품질'불량 정치를 빈번히 겪고 당하면서도 소비행위(투표) 때는 늘 어리석은 소비행태를 반복했다. 그게 과거 우리의 냄비식 '정치 소비' 행태였다.

줄소환 당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 측근 그룹들의 추한 모습에서 보듯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져 나왔던 권력의 비리, 부패도 정치소비 측면에서 보면 소비자(국민)를 얕본 데서 비롯된 惡(악)이다. 정치꾼 탓이 아니라 매서운 맛을 못 보여준 소비자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소비자의 날을 맞으며 생각해 보는 소비자 파워를 키워가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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