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어떤 신비

지난해 봄 대장암 3기 진단을 받고, 수술 후 7개월간 항암치료를 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암세포가 림프 절에 전이되어 다시 화학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그 과정이 대단히 큰 고통이었다. 항암제가 투여되자 머리카락과 눈썹이 모두 빠졌고, 횟수가 거듭되면서 손발이 갈라져 마디마다 피가 흘렀다. 혀와, 식도와, 위장은 헐고 극심한 구토증에 시달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면, 생기를 잃은 얼굴이 차마 바라보기 참담할 지경이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었던가, 문제가 만들어진 동일한 수준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약이 투입될 때마다 되풀이되던 몸의 고통을, 정말 몸으로는 대적할 길이 없어서, 나는 마냥 하느님께 기도하며 매달렸다.

사람들은 누구나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란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내 몸의 구조와 기능을 전혀 알지 못하고 지냈다. 아니, 그동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삶은 잡동사니로 뭉쳐진 커다란 꾸러미 같은 것이니, 가끔 몸이 좀 무질서하게 느껴져도, 식습관이 무질서해져도, 욕망의 무질서가 다시 영혼 속을 떠돌아도, 이게 사람 사는 본모습 아닌가, 어쩔 수 없는 일이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러나 암에 걸려 극한의 육체적 두려움과 공포를 겪어내면서, 비로소 나는, 내 몸을 어떻게 돌보아야 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치유 과정의 고통조차도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병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먹고, 어떻게 활동하며,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거울을 보며 내 몸에게 말했다. "미안해, 그동안 파마다 미용이다 머리카락을 많이도 부스러뜨렸지. 손과 발은 또 노예처럼 부리기만 했고. 맛있는 것만 탐했어. 조화를 바라는 하느님의 질서를 과도한 욕심이 마구잡이로 깨뜨렸던 거야. 널 병들게 해서 미안해, 널 이토록 만신창이로 만들어서 정말 미안해" 그러면서 반성하고, 위로도 했다.

항암치료가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안정을 얻으려고 한동안 기도하며 마음을 집중하고 있었는데, 손바닥에 금분 같은 것이 생겨나면서 몸의 기운이 한결 밝아지는 걸 강하게 느꼈다. 어둡던 투병의 시간들이 그 후 기쁨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던 것은 지금도 불가사의하게 생각된다. 문병 온 제자는 40도를 넘긴 고열로 까부라지는 몸을 싣고 한밤 응급실로 달려가 주었고, 퇴근을 미루고 있던 전공 의사는 지극한 보살핌으로 내 생명을 구해주기도 했던 것이다.

좀 여유가 생긴 요즘, 그때를 회상하다가 문득 골똘해지곤 한다. 그 밝은 기운은 병을 극복하려는 내 의지가 만든 것 일테지만, 이 우주의 질서 안에서 서로 응답하고 진동하던 그 어떤 신비에 대해서. 백미혜(시인·화가·대구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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