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 鬱陵郡 獨島里 20-2 金成道 貴下' 유려한 글씨체의 편지가 며칠째 김성도 이장 내외 방 윗목에 굴러다닌다. 발신지는 일본 규슈 사가(佐賀)현이다. 뜯지도 않은 채 버려져 있어 무슨 편지냐고 물어봤다. 김 이장은 "볼 필요 없다"면서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했다.
정성 들인 글씨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과 호기심에 뜯어봤다. 발신인은 재일교포로 규슈지역에서 민단(民團) 관련 일을 보는 간부인데 김 이장의 생활상을 통하여 독도가 한국땅임을 교포사회에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일상생활을 꾸려가고 있는지 꼭 답장이나 전화 연락을 달라고 했다.
편지한 분의 고국에 대한 애정과 취지가 고마워 적힌 일본 국제전화를 눌렀다. 약간 어눌한 한국말투의 80대 정도의 발신인은 편지 내용과 같이 꼭 김 이장과 연락을 취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조용한 시간인지라 김 이장에게 일본에 전화했던 이야기를 하니 '필요 없다니깐'하면서 버럭 화를 냈다. 편지를 뜯어본 미안함도 있고 더 이상 참견할 일이 아닌 듯해서 묵묵히 있었다. 옆에 있던 김 이장의 부인 김신열 씨가 머쓱했던지 "그놈들 믿을 수 없다니깐"하면서 목청을 돋우었다.
몇달 전에 일본 재일교포 대학교수라고 하면서 김 이장에게 전화가 왔다. 독도 생활상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 차근차근 대답해줬다. 나중에 김씨에 대해 물으며 "과거 해녀들은 그곳에서 낮에는 전복 따고 밤에는 뱃사람 술시중 들고 하지 않았느냐" "그때 일본인들도 왔느냐"는 식으로 물었다. 화가 난 김 이장은 "당신 묻는 의도가 뭐요"라며 전화로 대판 싸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교포를 사칭한 일본×들이 김 이장에게 유도질문을 해서 과거사를 날조하겠다는 의도로 보였다는 것.
나중에 다시 집으로 김씨한테도 전화가 왔다. "독도에 술시중 들 곳이 어디 있고 술 사먹을 뱃사람이 어디 있느냐"면서 김씨도 노발대발했다. 그 이후 일본 교포라느니 교수라느니 하는 사람들 연락은 일절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술에 관한 오해를 받고 보니 어업인숙소에서 술 먹는 것조차 못마땅해 한다.
한번은 모 대학 교수들이 학술조사를 와 어업인숙소에서 하룻밤 머물게 되었다. 으레 그렇듯 독도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라면 두어개 넣고 간단한 행장을 꾸리게 마련이다. 해가 빠지고 저녁이 되면서 일행 중 한 명이 미안한 마음에 김씨한테 "술 있으면 한병 팔아라"고 웃으며 말했다. "여기는 술 파는 술집이 아니거든요." 저녁식사를 하던 김씨는 수저를 놓고 그만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김 이장이 술이 필요하면 한병 달래지 무슨 말이 그러냐면서 4홉들이 소주 한병을 내줬다.
어업인숙소 현관 계단이 서도 정상에 올라가는 계단과 같기 때문에 서도를 오르려면 숙소를 지나야 한다. 그 때문에 서도 어업인숙소를 뭍의 여느 관광지 입구 식당이나 여관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한번은 무슨 연구기관에서 여성 세명과 남성 한명이 서도를 찾았다. 이 중 카메라를 든 한 여성이 어업인숙소 현관문을 빠끔히 열고 "아주머니 물골 넘어갔다 올 테니 한시간 후 라면 네개만 끓여놓아 주세요"라고 했다. 옆에서 듣는 사람조차 어안이 벙벙하고 김씨는 아예 기가 막혀 말을 잃었다.
일본 우익분자들은 울릉도 사람들이 생활터전으로 가꾸어온 독도역사를 왜곡하려고 끊임없이 획책한다. 그들의 행태에는, 옛날 독도해녀들을 '일본 뱃사람을 상대로 술장사 하려고 있었던 사람'들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전화질에서 볼 때, 그게 아니면, 최소한 독도사람들을 헐뜯어 독도를 떠나도록 하려는 기도이든가.
이런 마당에 우리나라 대학, 그것도 독도 관련 연구소 석·박사 연구원이라는 사람들이 김성도 이장 내외를 라면이나 끓여주는 민박집 주인쯤으로 취급하고 있으니….
도대체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독도에 오는지 한심할 따름이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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