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예산 처리 늦어지면 나라 전체가 어렵다"면

국회는 오늘까지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저버렸다. 우리 헌법(54조)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국회가 새해 예산안을 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시한이 12월 2일이다. 그럼에도 여야는 그런 헌법 규정은 우습게 여기며 매년 시한을 어겼고 올해 역시 그러한 악습을 이어간 것이다.

어제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지난 5년 모두 12월 30일 전후에 (예산안을) 처리했다"고 했다. 과거에도 법정 시한을 넘겼으니 바쁠 것 없다는 얘기다. 또 한나라당도 야당 때 예산안 처리를 지연시켰었다고 말했다. 정부 예산안 처리를 막고 있는 자신들에게 쏠릴 비난을 그런 식으로 둘러댄 것이다. 정말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이 아닐 수 없다.

헌법이 예산안 처리의 법정 시한을 정한 것은 국회 의결 이후 정부 쪽에서 후속적으로 밟아야 할 절차를 감안했기 때문이다. 국회를 거친 새해 예산의 집행계획을 다시 가다듬어 차질 없이 1월 1일부터 실행에 들어가도록 시간적 여유를 둔 것이다. 경우에 따라 여야 간 의견 차이가 클 때는 일시적으로 새해 예산을 전년도에 준해 집행할 수 있는 길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여야 한다. 해마다 헌법을 어기는 태도는 고질병인 것이다.

정부가 짠 예산안을 보면 한시가 급한 내용들이다. 경제가 바닥에 추락한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예산을 투입해야 할 서민과 중소기업 대책들이다. 새해 들자마자 쏟아 부어도 지금 같은 경제상황에서 약발이 어떨지 알 수 없는 판이다. 이런 마당에서 '예년에도 그랬다'는 투로 한가한 소리를 하는 야당은 국민의 속을 뒤집는 것이다. 절박성이 없기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지만 정부도 문제다.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은 어제서야 '친박' 의원 몇 명을 점심에 불러 조속한 예산 통과를 당부했다고 한다. 비서실장 말대로 '예산 처리가 늦어지면 나라 전체가 어려워진다'면 진작부터 정부 여당 전체가 달라붙어 뛰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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