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 다른 사람의 영혼을 매혹시키고 사로잡아 포로로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매개는 언어이다. 총탄은 육신을 종속시키는 수단이고, 언어는 정신적 종속 수단이다'('마음의 탈식민지화:내 마음 담는 그릇, 모국어')
언어의 지배방식은 제국이란 독수리가 감춰둔 발톱과 같은 무기다. 일제 식민 36년을 겪고, 해방 후 그 두 배의 세월 가깝게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생활 속에 잔재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언어는 그 나라 국민의 혼과 정신이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최소한 세계 언어의 절반 정도가 절멸해 버릴 수 있다고 한다. 무슨 일로 이 다양한 인류의 목소리가 침묵하게 되는 걸까?
지난 세기 동안 서방 유럽은 아프리카와 호주, 뉴기니, 아프리카에 살던 수많은 원주민들의 토착 언어를 '포식'했다. 이제는 영어의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죽어간 토착민 언어의 자리를 무서운 속도로 다시 메우고 있다. 한국도 뜨거운 영어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현재 국립국어원장에 재직 중인 지은이는 "여기에 정부가 가담해 그 욕망을 부채질하는 마당에 지역어를 보존하자는 이야기는 가히 미친 소리나 다름없는 허공의 메아리"라고 단언하고 있다.
지은이는 그동안 국가사업으로 진행해 온 '표준국어대사전'이 담당할 수 있는 지식 자원은 질량적 측면에서 이미 포화 상태에 도달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 한계를 여러 측면에서 제기한다.
예를 들어 경주와 포항지역에서는 상어를 편으로 떠서 꼬치로 만든 '돔배기' 없이는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고 할 만큼 중요한 음식이다. 또 북어를 두들겨 솜과 같이 가루로 만들어 조미한 '피움'도 있다. 이외 콩나뭇힛집(콩나물을 삶아 콩가루에 버무려 만든 잔치음식), 들나물인 '나새이'(냉이), '고들빼기' '가시게사레' 등 어휘는 국어사전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소설과 시 등에 나오는 정겨운 우리 어휘들을 예로 들면서 살아 움직이는 언어의 생태적 관점에서 왜 언어의 다양성이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다. 또 우리 국어사전의 계열적 체계의 문제점과 표준국어대사전의 발전방향, 넘쳐나는 외국어와 로마자 표기 등에 대한 제언 등 국어학자로서 고민들을 깊게 느낄 수 있다. 국어 능력향상과 국어 정보화, 국어사전 지식 강화 등 갖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청사진을 제시해주고 있다.
지은이는 국립국어원장으로 활동하는 내내 어문 정책에 대해 빗발처럼 쏟아지는 민원에 시달렸음을 이야기하면서, 여러 문제를 최소화하겠다는 신념으로 이 책을 냈다고 밝히고 있다. 둥지 밖을 나와 날갯짓하는 우리말이 되기를 바라는 국어학자의 신념과 애정이 물씬 느껴지는 책이다.
1953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및 동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거친 지은이는 동경대학교 대학원 객원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경북대학교 인문대 교수이자 국립국어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저서로는 '한국어방언학' '방언의 미학' 등이 있으며, '종이나발' '헬리콥터와 새' 등 4권의 시집이 있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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