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시작된 정밀농업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과다한 농약·비료 사용에 따른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와 안전한 고품질 농산물에 대한 수요 증가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비슷한 농업환경을 갖고 있으면서 10여년 전부터 활발하게 정밀농업을 연구해오고 있는 일본 현지를 찾아 한국형 정밀농업의 방안을 찾아봤다.
동해를 사이에 두고 한국과 마주보고 있는 호쿠리쿠(北陸) 지방은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쌀 생산의 중심지역이다. 도야마(富山)현, 이시카와(石川)현, 후쿠이(福井)현, 니가타(新潟)현이 모두 유명하지만 그 가운데 미코하라(神子原) 지역에서 나는 쌀은 로마 교황청에도 선물로 보내질 정도로 세계적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이시카와현 현청 소재지인 가나자와(金澤)시에서는 이 같은 명품 쌀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려는 연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03년부터 정밀농업을 도입, 품질 개선과 함께 환경보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가나자와에서는 수확량 모니터를 갖춘 콤바인, 토양분석 센서 등이 160㏊의 논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곳이 일본 정밀농업의 메카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농민들의 자발적 참여 덕분. 10a당 수확량이 논에 따라 최대 600㎏에서 350㎏까지 차이가 심한 데 대해 의문을 품은 농민들이 이시카와현 농업종합연구센터를 찾아와 해결책을 부탁하자 연구원들은 토양분석 등을 통해 개선방안을 제시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농업연구센터 에이지 모리모토 박사는 "관행농법에 비해 10a당 질소비료량을 30% 줄여도 수확량은 16% 증가하고 농지별 수확량 차이도 줄어들자 관심이 커졌다"며 "정밀농업이 아직 완전히 확립되지는 않았지만 농민들의 의욕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이시카와현의 성공은 물론 학계와 관련 연구진들의 끊임없는 기술개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사히맥주, 기린맥주, 코카콜라 등에 자동생산장비를 공급하는 시부야공업주식회사의 히라코 시니치 박사는 지난 2001년 동경농공대 시부사와 사카에 교수와 함께 일본 최초로 토양센서를 개발했다.
트랙터에 쟁기와 함께 장착된 이 센서는 2초 간격으로 15~20㎝ 깊이의 흙 속에 있는 수분·질소·탄소·전기전도도 및 땅의 굳기 정도 등을 분석기록한다. 1㏊의 논 특성을 파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으로 이시카와현은 연간 100만엔을 지원해 200㏊씩 측정하고 있다.
히라코 박사는 "홋카이도(北海道) 농업법인에 1대당 2천만엔에 판매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절반 가격 수준의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며 "보급형 모델이 시판되면 과학적인 정밀농업을 도입하는 농가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 인근의 사이타마(埼玉)현에 있는 행정법인 '농업·식품산업 기술연구기구'에서는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한 농작업지도 작성, 작물 생육상태 측정센서, 변량비료살포기, 수확량 모니터 등을 개발했다.
연구기구의 니시무라 요 박사는 "조만간 수확량 모니터가 장착된 콤바인과 변량비료살포기를 일반 농가들에 판매할 예정이어서 내년은 일본 정밀농업의 상용화 원년이 될 것"이라며 "센서의 정밀도는 미국제품보다 더 뛰어난 수준"이라고 전했다.
일본의 정밀농업 연구는 이미 10년이 지났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3년까지 기술·장비들이 잇따라 개발됐고 이후 농가와 대학 실험농장 등에서 현장 적용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일본의 정밀농업을 성공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벼농사 부문에만 정밀농업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고부가가치농업인 과수산업 등에서는 연구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또 연구기반도 미국에 비해서는 취약해 일본 전체에서 정밀농업을 전공한 교수는 20여명에 불과하고 아직 농업정보컨설팅회사도 등장하지 않았다.
교토대학 우메다 미키오 교수는 "정밀농업에 필요한 하드웨어 개발은 완료됐지만 더 중요한 소프트웨어는 아직 미완성인 상태"라며 "농가의 규모, 고령화, 기후 등이 서로 비슷한 한국, 일본, 대만 등의 공동 연구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가나자와에서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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