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송과체 종양'으로 사경 헤매는 이상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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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민아, 엄마 마음이 들리니?" 김윤례(38)씨는 깊은 잠에 빠진 아들의 곁을 뜨지 못했다. 생때같은 아들이 며칠 사이에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이양우(42)씨의 4대독자인 상민(10)이는 결혼 6년만에 얻은 아이였다. 튼실하고 활달한 상민이는 이씨부부에게 모든 어려움을 잊게 하는 '기쁨'이었다. 그런 상민이가 병상에 누웠다. 두달이 채 안됐다. 상민이의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아직까지 상민이가 병실에 누워있다는 걸 믿지 못한다.

'서부초교 3학년 6반 이상민'

이씨는 아들이 똑똑해 매달 80만원을 사교육비로 쏟아부었지만 힘든 줄 몰랐다고 했다. 17년차 숙련공인 아빠의 월급 170만원과 엄마가 부업으로 매달 번 돈 100만원은 넉넉진 않아도 상민이 양육에 전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두달 전까지의 얘기다.

어머니 김윤례(38)씨는 최근 벌어진 일들이 혼란스러울 만도 한데 아들이 병상에 눕기 전 며칠간의 기억을 통째로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10월 2일부터 5일까지 징검다리 휴일이었어요. 2일 오후에 태권도, 피아노학원 다녀오고 같이 옥수수를 먹고 저녁에는 아빠랑 같이 치킨을 사먹고 잤어요. 3일은 쉬는 날이었잖아요. 그날따라 노래방에 가자고 조르더라고요. 엄마가 하루종일 집에서 일한다고 같이 나가서 좀 놀자면서… 제가 베갯잇 가공 부업을 하고 있었거든요. 다음에 가자고 하고 넘어갔는데 다음 날 문제가 생겼어요. 4일은 학교에 가는 날이었는데 머리가 아프다더군요. 바로 토하기에 동네병원에 데려갔더니 감기라더군요. 이틀이 지나도 차도가 없어 한의원에 갔더니 따더군요. '병원에 갈 필요없다'고 했어요. 하지만 못 미덥더군요. 뇌수막염도 많이들 걸리는 시기였거든요. 곧바로 대학병원으로 가서 CT촬영을 했더니 뇌종양이라더군요. 그 시간이 6일 오후 1시 30분이었어요."

김씨는 그 상황을 수없이 떠올려본듯 한올의 엉킴도 없이 기억의 실타래를 풀었다.

'송과체 종양'. 주치의도 교과서에서만 본 병이라고 했다. 밤낮을 구분하고 그에 따라 신체 기능을 조절하는 호르몬 분비 기관인 송과체에 종양이 생긴 것이었다.

"1%의 가능성도 없다 할지라도 우린 믿습니다. 상민이는 일어날 겁니다."

"이번 주를 넘기기 힘들 것 같습니다"라는 의료진의 말을 벌써 세 차례나 들었다고 했다. 영정사진에 쓰려고 유치원 졸업식 사진도 준비했지만 지금은 병실 캐비넷에 처박혔다. 의료진이 말한 '고비'를 상민이가 잇따라 이겨냈기 때문이다. 의료진도 이 점을 인정했다. 지난 달 19일에는 폐렴기까지 있어 힘들 거라고 했지만 부부는 극진히 간호했다. 일주일간 한시도 쉬지않고 가래를 빼줬다. 의료진도 "의사가 아닌 부모가 아이를 살렸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CT촬영 결과는 희망적이지 않다. 응급실로 실려왔던 당시 상민이의 종양은 지름 2cm 남짓이었는데 두달 새 4cm로 커졌다. 의료진은 "추이를 지켜볼 뿐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부부는 상민이를 번갈아가며 간호하고 24시간 맥박과 호흡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부는 "상민이가 잘 때는 맥박이 분당 70회 정도지만 깨면 130회 이상된다"며 "말을 못해 답답한 마음에 손을 아래위로 움직이며 눈물만 흘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너무 큰 고통"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금슬이 좋은 부부에게 상민이는 "이혼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50여일째 혼수상태에 빠졌다. 상민이가 깨어나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되묻고 싶다는 부부. 헛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염색공장에 다니던 아버지 이씨는 휴직 상태였다. 이씨는 "공장에서도 좀더 여유를 주겠다고는 했지만 경기가 어려운데 2달 이상 일을 쉬면 공장에서도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고개를 떨궜다.

그나마 매년 1천만원까지 지원해주는 정부의 '암환자 의료비 지원사업'이 있어 큰 짐은 덜었다. 하지만 당장 1주일에 70만원씩 병원비가 들어가고 있다. 두달새 병원비만 1천만원에 이른다.

"상민이의 눈꺼풀을 위로 올리면 눈동자가 움직입니다. 의료진은 '자고 있는 상태'라고 하지만 우리를 보며 따라 움직여요. 돈이 얼마가 들든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요?"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그냥 반응하는 것'이라는 의료진의 말을 정면으로 뒤집고 있었다. 취재를 마친 기자는 "잘 있어, 상민아"라며 상민이의 손을 간질였다. 손이 펴졌다. 마치 인사라도 하려는 것처럼. 부부도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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