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아빠들이 힘들다

불혹.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공자가 직접 체험했다는 이 '불혹'을 나는 지금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가? 혹 하고 있는가? 또는 불혹하고 있는가?

꽤나 잘나가는 친구 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는 이유를 알 것 같다"는 한 친구의 이야기. 이 친구야말로 '종교'라고 하면 가장 먼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곤 하던 친구 아닌가? 또 다른 한 친구의 이야기. "이민에 대해서 뭐 좀 아니?" 하는 질문. 그리고 얼마 전 나의 멘토 중의 한 분을 만나 대화 도중 불쑥 화를 내게 되었다. 모두 다 내가 틀렸다고 하시니까.

아래로는 자식들을 위로는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아빠들. 이 아빠들이 힘들어 보인다. 지금 전 세계를 덮치고 있는 경제적인 문제의 영향도 있겠지만 무언가 다른 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큰 꿈을 가지고 사회에 나와서 물불 가리지 않고 일을 배우고,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겪으며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쌓아가면서 열심히 일을 했다. 자녀들의 귀엽고 어여쁜 어릴 적 모습에 대한 뚜렷한 이미지 하나 없는 건 기본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 열심히 사는 일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사는 일이 어떠한 가치와 보람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어서 문제인 듯하다. 열심히 달린다고 하는 것은 그 목적지가 있어야 하는데 일을 하면서 -그렇다고 돈에 대한 큰 욕심이 있어 무슨 도박을 하는 것도 아닌데- 항상 첫출발지에서 다시 시작하는 듯한 환경에 처하게 되고, 어서 안정을 하여 독서도 하고 예술작품도 감상하고 사회봉사도 하고 싶은데 이러한 일은 항상 동경의 대상으로만 남을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아빠들은 미래도 없고 현재도 없다. 마치 입시생처럼 매번 새로이 닥치는 시험과 과제만 있을 뿐이다. 미래는 그렇다치고 현재조차 없는 삶이란 가능한 일인가? 사실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불우하게도 우리 모두는 이러고 있다. 언제나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지만 그 끝이 어디인지 언제나 보이지 않고 바로 지금 내 주변에 어떤 소중한 것들이 있는지 느끼지도 못한 채 그저 열심히 달리고 성급히 두리번거리는 행위를 반복할 뿐이다. 오래된 말씀 하나가 생각난다.

"무엇에든지 참되고,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이렇게 살아라."

그래. 이러나저러나 보이지 않는 미래를 고민만 하지 말고 이 말씀만 생각하며 '오늘'을 살자. 40까지는 살았으니 나름대로의 개똥철학은 있지 않은가.

김성열 수성아트피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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