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시계처럼 켜놓은 텔레비전 화면에 한 할머니가 나타났다. 얼굴에는 구겨놓은 종이같이 주름이 굵고 깊다. 고물을 주워 생활하고 있는 할머니는 최근 불경기 여파로 고물마저 급격히 줄어든데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며칠 동안 몸살이 나 고물을 못 팔아 이틀 동안 설탕물로 끼니를 연명했다는 사연이 내레이션으로 화면 너머 잔잔히 흐른다. 요구르트 한 병을 마시고 난후 치아가 하나도 없는 잇몸사이로 삐죽히 혀를 내밀어 입술에 묻은 한 방울까지 훔치고 있었다. 이를 화면 앵글에 맞추는 여자 카메라 작가는 울고 있었다.
출근길에 고물상이 있다. 한적한 주택가 2차선 도로변에 있는 고물상 앞을 지나자면 힘겹게 리어커를 끌며 도로를 건너는 할머니들을 종종 만난다. 개조된 소형 리어커가 다 지나갈 동안 신호등과 관계없이 차량은 멈춰야 한다. 리어커에 실린 고물은 빈 상자 두어 개에, 이따금씩은 고장 난 가전제품이 한두 개 실려 있다. 반쯤 등이 구부러진 할머니는 리어커에 가려 마치 바퀴 달린 고물이 도로를 지나는 듯 하다. 바람에 낙엽이 뒹구는 흐린 가을 날 아침에 이런 할머니를 만날라 치면 입에서 저절로 눈물의 기도가 나온다.
"할머니 고물 많이 줍게 하시고, 남은 여생 건강하게 살게 하소서."
개원 초부터 단골환자인 정아는 할머니랑 같이 살고 있다. 딸이 없는 나로선 초교 6학년인 정아가 무척 귀여울 수밖에 없다. 아이도 어른이 자기를 얼마나 좋아하는가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눈치채고 있는 듯하다. 진료실에 오면 아토피 진료는 단숨에 끝내고 재잘재잘 수다를 떨고 간다. 정아는 방학을 싫어한다. 학교 못 가서 심심하고 무료 급식이 없어 점심을 못 먹고 하루 종일 고물 줍는 할머니를 따라 고물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아가 합세하면 고물 매상이 최소한 1~2천원은 올라간단다.
그러나 무료 급식이 없으니 방학이면 오히려 적자라는 매우 슬픈 얘기를 마치 남의 일처럼 태연하고 유쾌하게 털어놓는다. 정아는 웃고 있는데 나는 왜 눈물이 나는 걸까? 무료 급식대상 초'중'고생 62만명 가운데 절반이 방학 때는 밥을 굶는다는 언론의 보도가 생각난다. 과연 이 아이들은 밥만 굶는 것일까?
최근들어서는 월스트리트 금융가들의 탐욕이 빚어낸 금융위기가 이들을 더 굶게 하고 있다. 주식과 펀드가 반 토막이 났다고 울상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반이라도 남아 있지 않은가? 금융위기로 인해 주식, 펀드와는 한 치의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굶어야 하는 날이 많아지고 언제 배고픔을 해결할 지는 아득하기만 하다.
어느덧 거리에는 벌써 크리스마스 트리가 성급하게 나와 밤이면 눈꽃등을 밝히는 한 해의 끄트머리에 와있다. 이해의 마지막 날, 단 하루만이라도 그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울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되돌아보는 것이 사람된 도리가 아닐까 싶다. 연탄을 구입할 단돈 400원이 없어 오늘도 냉골에서 지내야만 하는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의 힘겨운 삶의 몸짓에 힘을 실어줄만한 따뜻한 말 한마디와 온정의 손길을 보내야 할 때인 것 같다. 053)253-0707, www.gounmi.net
(고운미피부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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