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味의 산실 대구]대중의 햄버그스테이크

1960, 70년대 유행...맛보다 분위기로

햄버그스테이크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함부르크 지방에 주둔한 연합군이 식량으로 소나 돼지 등을 잡아먹고 연한 부위는 식재료로 사용하고, 질겨서 먹지 못하는 부위는 버리고 갔다. 전쟁으로 먹을 것이 없는 자방 주민들이 그냥 먹기는 너무 질겨 곱게 다져서 먹었다는 유래가 설득력을 지닌다. 우리나라도 1960,70년대 햄버그스테이크 문화가 성행했다. 그 이유를 지금 생각해보면, 등심이나 안심 스테이크는 가격이 비싸기도 했지만 질겨서 씹히지 않을 정도로 육질이 좋지 않아 햄버그스테이크를 즐겨 먹지 않았나 싶다. 요즘엔 수입쇠고기와 한우를 구분, 원하는 육질을 사용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한우만을 사용했다. 이때 사용한 한우는 육우보다는 농촌에서 일을 하다가 더 이상 일꾼으로서 가치가 없는 일소를 도살한 고기를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일을 많이 한 쇠고기의 육질은 당연히 질길 수밖에 없었고, 그 고기로 스테이크를 만들다보니 육질이 질겨 인기가 없었던 것이다.

1960년대 대구에는 00회관이라는 서양조리집이 탄생했다. 그 당시 지금의 쇠고기안심스테이크(Fillet Mignon Steak)는 찾아볼 수 없었고, 돼지고기 60%, 쇠고기 40% 아니면 쇠고기 또는 돼지고기에 빵가루·양파 등 야채를 20% 이상 넣어 만든 햄버그스테이크가 주 메뉴였다.

철판에 구운 햄버그스테이크에 그래비(Gravy) 소스를 끼얹어주었데, 그래비 재료를 구할 수 없어 그냥 흉내만 낸 소스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는 맛보다도 양과 분위기가 우선이었고, 또 그래비 소스 맛을 잘 아는 고객도 없었기 때문에 햄버그스테이크에 그래비 소스를 듬뿍 끼얹어주면 최고의 인기 메뉴가 됐다. 당시는 햄버그스테이크가 레스토랑 전체 매출의 70% 이상 차지할 정도였다.

그 시절 젊은 커플의 최고 데이트장소가 바로 양식 레스토랑이었다.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를 해보는 것 자체가 자랑거리가 될 정도였다. 당시 대부분 젊은이들은 포크와 나이프 사용법을 잘 몰랐는데 간혹 남자가 으스대며 포크·나이프 사용법을 여자친구에게 가르쳐 주는 풍경은 지금 생각해 봐도 애교스럽다. 요즘은 오히려 여자들이 남자 친구에게 식당의 에티켓을 가르쳐 주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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