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기업은 어디일까? 사실 대구지역에서 전국적 명성을 떨치는 기업체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초등학생에게는 다르다. 업체 이름은 몰라도 '그랜드 체이스' '엘소드'라는 게임 이름을 들으면 웬만한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 회사'라고 말할 것이다. 바로 KOG다. 이종원 대표는 인터뷰에 앞서 농담이라며 "지인들에게 KOG가 유명한지 LG가 유명한지 물어보자고 한 적이 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밑으로"라고 웃어보였다. 그는 자신감이 넘쳤지만 조심스러웠고, 적확한 표현을 찾기 위해 한동안 말을 중단하기도 했다. 인터뷰 다음날 '갑작스런 질문을 받고 제대로 답을 못한 것 같다'며 기억을 더듬어 다시 답변 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사람은 본디 선하디 선하다'고 말했다.
◆다 같이 양복 입으면 재미없잖아요
-KOG는 어떤 회사입니까?
"지난 2000년 설립했고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는 데 한 우물을 팠습니다. 전 세계 메이저 게임회사들이 다 잘 알고,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회사가 됐습니다. 매출액은 100억원 정도. 초창기에는 거의 매출이 없었죠. 잘 기억나지 않지만 1억원 미만이었어요. 직원 숫자는 4명이었는데 지금은 120명입니다. 매년 30~50%씩 성장했습니다. 5개 작품을 출시했는데 '그랜드 체이스'와 '엘소드'가 대표작입니다. 현재 그랜드 체이스 회원수는 국내에만 400만명이고 해외에 300만명입니다. 게임을 기반으로 한 만화책은 60만부 이상이 판매됐습니다. 엘소드는 출시 1년이 채 안 돼 100만명에 이릅니다. 현재 세계 7개 나라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고, 조만간 10여개국으로 늘어날 겁니다."
-양복을 입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는데 그는 꽤 난처해하고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늘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회사 문화와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KOG는 보다 열려있고 평등하고 투명한, 아울러 권위적이지 않은 문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복장도 자유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 똑같으면 재미없잖아요."(그는 몇해 전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하는 자리에서도 티셔츠 차림이었다. 수행원들조차 적잖이 당황했지만 준비해간 양복도 없어서 그대로 진행했다.)
-학창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서부초등학교 다닐 때 탁구선수를 했습니다. 소년체전에 나가 동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탁구 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려서부터 과학자가 꿈이었기 때문에 탁구를 그만뒀습니다. 계성중·청구고·경북대 수학과를 졸업했고, 학부를 마친 뒤 유학 준비를 했죠. 석사는 미국 시카고에 있는 일리노이공대에서, 박사는 조지워싱턴대에서 전산학으로 받았습니다. 컴퓨터그래픽스를 전공했죠. 돌아온 게 1999년쯤일 거예요. 학위 마치고 바로 돌아와서 KOG 설립 준비에 들어갔죠."
◆이곳 대구에서 세계적 제품을 만들 겁니다.
-굳이 한국에 돌아온 이유는?
"졸업시험까지는 쾌속행진이었는데 마지막 10%가 힘들었습니다. 박사를 거의 7년 했습니다. 정말 안 되더군요. 당시 미국에서 전산학이 뜨는 분야여서 생계는 별 걱정이 없었는데, 그렇게 뜨는 분야이다보니 박사 학위 받기가 더 어려웠죠. 마지막에 프로젝트를 맡게 됐는데, 이게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됐습니다. 6명 정도 팀을 이뤄서 프로젝트를 하는데 정말 힘든 거예요. 제가 팀장이었는데, 막바지에는 다시는 여러명과 일을 안 하겠다는 결심을 할 정도였어요. 일년 정도 걸렸는데, 상처도 많이 주고 저도 많이 받았죠. 그런데 그 일을 끝내고 정말 큰 감동을 받았어요. 지금까지 인간관계는 아주 표면적이었는데 함께 일한다는 참 맛을 알게 된 거죠. 말도 잘 안 통하는 미국인들과 일년을 부대끼면서 10, 20년 사귄 친구보다 깊은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그 프로젝트가 교수에서 기업가로 꿈을 바꾼 계기가 됐나요?
"그렇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회사의 중요한 가치를 느꼈죠.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회사를 차린 겁니다. 서울지역 대학에서 바로 교수로, 미국 유수 대학에서도 교수직 제안이 왔습니다. 그러나 논문 쓰고 연구하는 것보다 제품을 만들어보는 게 뜻 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엔지니어의 핵심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니까요."
-KOG는 어떤 뜻이고, 어떤 회사를 모델로 삼았습니까?
"고객이 즐거워 케이오(KO)할 때까지 간다, 즉 '케이오지'라는 의미죠. 하하하. 회사를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롤모델은 픽사(PIXAR)라는 유명한 애니메이션 회사입니다. 협력적이고 서로 소통하고 자유로운 그런 문화가 정말 부러웠습니다. 지속적으로 전 세계인들이 주목하고 즐기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사실은 저도 가고 싶었고 선배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조지워싱턴대 박사과정 동료들이죠. 지금도 가끔 연락할 정도로 친하게 지냅니다."
-남들이 다 가려는 미국에서 한국에, 그것도 대구로 온 이유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당시 어머니가 편찮으셨고요. 애국적인 생각도 발동한 것 같습니다. 제가 만약에 미국에서 어떤 회사에 취직하거나 설립했다면 설령 잘 되더라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리고 대구에서 어떤 세계적인 제품을 지속적으로 만든다면, 굉장히 어렵지만 그만큼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정말 인생을 걸 만한 일이죠. (그래서 서울이 아닌 대구를 택했나요?) 하하하. 솔직히 몰라서 그랬습니다. 태어나서 대구에서만 자랐으니 서울을 몰랐죠. 솔직히 미국에서는 서울대를 나왔건 경북대를 나왔건 상관없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공부하다 보니 당연히 고향을 택한 거죠."
◆99% 불리한 지역, 1% 결집력이 이겨냅니다.
-사업을 하면서 대구라는 불리한 점을 느꼈을 텐데?
"지역이 99% 불리합니다. 단 1%가 유리한데, 잘하면 불리한 99%를 능가할 수 있는 장점입니다. 뭔지 아세요? 바로 팀워크입니다. 대구이기 때문에 그런 게 가능합니다. 마치 독서실이나 절에서 공부하는 느낌이랄까. 쉽게 말하면 우리끼리 만나고 알아갈 시간이 더 많다는 거죠. 일본 교토대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잇따라 배출하는데 도쿄대에는 한명도 없는 이유, 저는 도쿄가 너무 번잡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토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거죠. 우리 역시 함께 일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투자를 받으면서 투자자들로부터 서울 이전을 권유받지 않았나요?
"제품 자체에 대한 투자는 한번 받았지만 회사 지분을 요구하는 투자는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거래업체들로부터 서울 이전 권유는 많이 받았죠. 유통사들도 그렇고. 서울로 오는 순간 회사 가치가 2, 3배 뛴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안 가는 이유는 뭡니까?) 우리는 항상 MT 가는 기분입니다. 서울 간다고 해서 우리 직원끼리 결속력이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서울 가면 복잡해지기만 하니까. 팀워크를 다진다면 99개 불리한 점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팀워크를 강조하지만 직원 간에 갈등도 있을 텐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죠. 사람은 본디 착하고 좋습니다. 사람들은 남들보다 조금 더 일하는 것 개의치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걸 하고픈데, 팀에서 다른 걸 하라'고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회사가 시켜서 억지로 하지만 능률이 오를 리 없고 당연히 불만이 생기죠. (갈등 해소를 위해) 많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저녁에도 직원들과 영화 보고 술도 마시면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원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축구도 하고, 일년에 한번 전 직원이 스키장에도 갑니다. 지극히 비생산적인 일을 통해서 생산적인 관계가 돈독해집니다. 이걸 깨달은 것이 너무 고맙습니다."
◆내년에 나올 새 게임 생각하면 짜릿합니다.
-성공한 게임업체 CEO인데, 연봉이 얼마나 됩니까?
"연봉은 많아도 재미없고 적어도 재미없어요. 물론 제 연봉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건 말씀 드릴 수 있어요. 제 바로 밑에 사람과 10% 이상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이건 재미있지 않나요? 하하하."
-가족들에게 미안한 점도 많을 텐데?
"아이가 셋 있습니다. 아들, 딸, 아들인데, 고1·중3·중1입니다. 다행히 공부는 잘합니다. 거의 반에서 1등 하죠. 무엇을 공부하는지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저 역시 학과 선택이나 진로를 결정할 때 부모님이 제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해 주셨어요."
-살아오면서 받은 가장 곤란한 부탁은?
"돈 빌려달라는 부탁. 무지 많이 받습니다. 직·간접적으로. 사업하는 사람의 숙명인 것 같아요. 현금을 재어놓은 것도 아닌데. 제일 곤란한 부탁은 인사에 대한, 채용해달라는 부탁입니다. 물론 그런 부탁을 받아도 해당 팀에서 오케이하지 않으면 절대 뽑지 않습니다. 만약 팀에서 좋다고 하면 채용합니다. 물론 그런 경우는 부탁을 받아서라기보다는 우리 회사에, 그 팀에 적합한 인물이니까 뽑는 거죠."
-KOG를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으세요?
"먼저 세계적인 게임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스타크래프트를 만든 블리자드 같은 회사는 6개월마다 100, 200%씩 성장한다고 하죠. 직원만 수천명이고, 매출액은 연간 조 단위쯤 될 거예요.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궁극적으로 픽사와도 경쟁하고 싶습니다. 투명하고 소통하며 정직하고 나눌 줄 아는 그런 선진문화를 가진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차기작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기대하셔도 될 겁니다. 지금까지 KOG의 작품이 저연령층, 초교생이나 중학생용이었는데 이번에 나오는 게임은 성인도 즐길 수 있는, 가히 대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내년 초에 서비스를 오픈할 예정입니다. 이름을 비롯해 모든 것이 비공개입니다. 3인칭 액션 게임입니다. 지금도 새 게임을 생각하면 짜릿해집니다."
본사(교보문고 14층)에서 헤어지자고 했지만 그는 건물 밖까지 나와서 모퉁이를 돌 때까지 함께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시간을 빼앗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바쁘게 사는 인물이었다. "대구라는 도시에서 많은 격려도 받지만 또 견제를 받는 경우도 많다 보니 행여 좋은 뜻으로 한 이야기가 곡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와 함께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 이종원은?=나이는 본인의 뜻에 따라 비공개. 30~50세 사이로 추정됨. 대구 토박이이며 서부초교, 계성중, 청구고를 졸업한 뒤 경북대 수학과를 마치고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공대에서 석사과정을, 워싱턴DC에 있는 조지워싱턴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교수직 제안을 뿌리치고 직원 4명으로 회사를 차렸다. 세계적 애니메이션 업체인 픽사(PIXAR)에 아는 사람이 많다며 은근히 자랑(?)하고, 연간 조 단위 매출액을 올리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즐기는 지극히 현실적인(?) 기업인. 양복보다는 청바지에 티셔츠가 역시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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