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지난 1995년 첫 민선 자치단체장이 탄생했다. 1기 민선 단체장의 임기는 1995년 7월부터 1998년 6월까지. 첫 민선단체장이 임기를 끝낸 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나름대로 포부와 야심과 희망을 갖고 첫 발을 내디뎠던 제1기 민선 단체장. 초대 단체장으로 끝난 경우도 있고 3선을 연임한 단체장도 있다.
대구경북 1기 단체장 중에는 중도하차한 이는 거의 없지만 2기와 3기로 넘어가면서 선거법 위반 등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리를 물러난 경우도 있었다. 평균 연령대가 60, 70대에 이르는 1기 단체장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으며, 후임 단체장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민선 초대 대구시장을 지낸 문희갑(71)씨는 현재 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에서 지내고 있으며, 현재 특별한 직함은 맡고 있지 않다. 주로 책을 보며 소일하고 산책하는 정도라고 수행 비서는 전했다. 종종 과거 지인들이나 손님들이 찾아와 자문하면 차를 대접하고 담소를 나누는 정도이며, 대외 활동은 가급적 삼가고 있고, 현 정국 및 시정에 대해서도 함구하는 편이라고. 1~3기 민선 도지사를 지낸 이의근(70)씨는 2006년 8월부터 대신대 총장, 지난 1월 제17대 대통령 당선자 정책자문위원단 자문위원을 역임한 뒤 지난 5월부터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변호사 출신으로 민선 초대부터 3기까지 대구 북구청장을 지낸 이명규(52)씨는 17대를 거쳐 현재 18대까지 2선 국회의원(한나라당)이 됐다. 서울대 치의학과를 졸업한 뒤 대구에서 치과의사로 활동하던 이재용(54)씨는 민선 1·2대 남구청장을 지낸 뒤 2005년 6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환경부 장관, 2006년 8월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현재 치과의사로 재변신하기 위해 지난여름부터 서울에 임시 거처까지 마련해 모교와 삼성의료원, 세브란스 병원 등에서 다시 치과의사 수업(?)을 받고 있다.
지난 도지사 선거에서 당시 김관용(66) 구미시장에게 고배를 마신 정장식(58) 포항시장은 2006년 7월부터 전공(서울대 경제학과)을 살려 대구대 무역학과 객원교수를 지낸 뒤 지난 3월부터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직을 맡고 있다. 의성고 교장을 역임한 뒤 민선 1~3기 11년에 걸쳐 의성군수를 지낸 정해걸(69)씨는 지난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지난 국정감사에서 '쌀 직불금' 문제를 처음 폭로하면서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1기 단체장들도 있다. 지난 2005년 9월 유명을 달리한 고(故) 황대현(당시 68세) 달서구청장은 3선 연임에 성공한 뒤 재임 중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대구지방보훈청은 이듬해 6월 '자치단체 경영의 달인'이라는 칭호가 붙었던 황 전 구청장을 국가유공자(순직공무원)로 결정했으며, 그 해 9월 유족들은 유고수필집 '자치단체 경영의 가나다'를 출간했다. 1기 단체장은 아니지만 2002년 7월부터 4년간(3기) 대구 중구의 행정을 책임졌던 정재원(당시 65세) 전 중구청장도 유명을 달리했으며, 지난 2월 15일에는 1, 2기 영천 시정을 맡았던 정재균 전 시장이 와병 중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조용히 그리고 열심히 살 뿐
1기 단체장 중 대부분은 특별한 직함이나 직책을 맡지 않고 조용한 노년을 즐기고 있었다. 1기 또는 1, 2기를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단체장들은 지역별 발전협의회를 통해 전임 단체장으로서 조언을 하는 역할 정도에 만족할 뿐 새롭게 일을 시작하거나 다른 직책에 욕심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언론에서 임기 만료 10년을 맞아 잊지 않고 관심을 가져준 데 대해 한결같이 고맙다고 했다.
최근 현 구청장과의 갈등이 표면화된 김규택(72) 전 수성구청장은 "대외활동을 일체 거부하고, 일을 맡아달라고 해도 나를 가만두어달라고 부탁할 정도인데 왜 이런 소문이 나는지 모르겠다"며 "수성구가 잘 되기만을 여전히 바랄 뿐"이라고 했다.
이재용 전 남구청장은 "돌이켜 생각하면 참 힘든 시간이었다"고 술회했다. 내년 초쯤 대구에서 치과의원을 열 예정인데 "처음 한두 달은 (시술하는 데) 손이 풀리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지금은 아주 좋아졌다. 정치와 결별한 것은 아니며, 어떤 가능성도 열려있기 때문에 반드시 어떤 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않는다"고 했다.
강현중 (74) 초대 중구청장은 "IMF 경제위기로 예기치 못한 불미스런 일이 있어 임기를 석달여 남겨두고 중도 하차한 점이 주민들에게 송구스럽다"며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주류 유통업을 여전히 하고 있어 먹고 살 걱정은 없다"며 웃었다. 오기환(76) 전 동구청장은 "특허를 가진 친구와 함께 음식물쓰레기 사료화사업에 전념 중인데 조만간 시연회도 할 것"이라며 "후임 구청장을 비난할 위치는 아니지만 여러가지 아쉬운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이의상(69) 전 서구청장은 "지난 7월부터 교회에서 만든 노인요양기관인 창성노인복지센터 일을 아내와 함께하고 있다"며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인데, 지금껏 시민들에게 진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고 했다.
양시영(64) 전 달성군수는 "과거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취미생활을 하고 산악회 만들어 산에 오르고, 대학에서 풍수지리를 취미삼아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성주에 한 700평 정도 땅을 마련해서 야생화도 키우고 약용식물도 재배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막걸리 한 잔 마시는 기분이 이렇게 좋은 줄 미처 몰랐고, 내년이면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65세가 된다"며 껄껄 웃었다.
◆아쉽지만 미련은 없어
경북지역 1기 단체장들은 한결같이 "임기를 무사히 마치게 도와준 주민들께 고마울 따름이며, 다시 선거판에 뛰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공인회계사인 박기환(61) 전 포항시장은 지난주부터 포항MBC '생방송 시사토론'의 사회자로 한달에 한번씩 활동하고 있다. 그는 "(비한나라당으로서) 지역민의 인식에 대해 그만큼 실험하고 평가를 받았으면 된 것 아니냐"며 "지역 정서의 한계를 파악한 만큼 정치적 욕망도 별로 없고 집착할 뜻이 없다"고 했다. 경주 신라CC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이원식(71) 전 경주시장은 "재임 중에는 늘 스트레스성 소화불량 등에 시달렸는데 지금은 건강이 매우 좋아졌다"며 "민선 3기 선거에서 당적을 바꾸는 바람에 떨어졌는데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잘 된 일"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박팔용(61) 전 김천시장은 기자가 전화를 거니 지금 운동을 하고 있다면서 "민선 1~3기 시장까지 했는데 충분히 만족하며, 지난 총선에서 주민들의 뜻으로 떨어졌는데 겸허히 받아들이고 지금은 조용히 살고 있다"고 했다.
상수도관 제조회사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정동호(67) 전 안동시장은 "매일 새벽 5시쯤 일어나 아령을 들고 강변길을 따라 10km씩 산책을 하며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며 "전임 시장이 자꾸 공적인 활동을 하고 말을 하면 이런저런 말썽이 생기기 때문에 그런데에는 전혀 연연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영주국제교류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진영(69) 전 영주시장은 "시장이 되기 전 국회의원(제13대) 시절부터 공직을 떠나면 고향에서 살겠다고 약속했다며 교류협회 일 외에는 다른 일을 따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근수(74) 전 상주시장은 "지난 2월 지인들과 함께 회원 127명이 참여하는 '희망상주21'을 만들어 친목도모와 지역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김학문 (73) 전 문경시장도 "다 지나간 시장 시절이 새삼 그리울 것도 없으며, 직함도 없고 공적인 일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최희욱(73) 전 경산시장은 근황을 묻는 물음에 "그냥 집에서 논다"며 웃어보인 뒤 "그저 민선 1기로서 지역 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자부심만 남았다"고 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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