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곰, 엄마곰, 아기곰이 숲 속 오두막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곰 가족이 식사를 하기 위해 죽을 끓여 그릇에 담아놓았는데, 너무 뜨겁습니다. 죽이 식을 동안 곰 가족은 숲 속으로 산책을 나갑니다. 그때 금발머리 소녀 골디락스(Goldilocks)가 오두막집에 들어옵니다. 배가 고픈 소녀는 죽 맛을 봅니다. 아빠곰 죽은 너무 뜨겁고 엄마곰 죽은 너무 차갑습니다. 아기곰 죽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습니다. 골디락스는 아기곰 죽을 맛있게 먹습니다.
영국의 전래동화 '곰 세마리'에 등장하는 대목입니다. 가끔씩 경제 기사에 골디락스라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골디락스란 3가지 죽 가운데 소녀가 적당한 온도의 죽을 먹고 좋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제의 호황 상태를 비유하는 용어이지요. 경제가 고도 성장하면서도 물가 상승이 미약한 이상적인 상태 말입니다. 올해 초만 해도 우리는 골디락스 꿈에 빠져 살았습니다. 인플레 위험 없이 자산(주식·집값)의 가치가 끝없이 상승하리라는 환상이었습니다. 거품이 만들어낸 '잔치'를 즐겼던 겁니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다시 맞을 가능성은 30%라고 합니다.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투자분석가 박경철씨는 최근 한 강연회에서 "부동산이 연착륙하지 않으면 한국경제가 큰 위기에 빠질 것이며 최대 고비는 내년 2, 3월경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10년 전의 IMF 외환위기 때 무엇을 배운 것일까요. 한국호를 옥죄는 현재의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는 은행들의 무분별한 외형 경쟁으로 빚어진 것입니다. 지난 몇년 동안 은행들은 단기 외채를 끌어와 무분별하게 부동산 대출로 뿌렸습니다. 은행들의 이 같은 행태를 보면 10여년 전 단기로 외채를 빌려와 투자 위험이 높은 나라에 장기로 빌려주는 바람에 외환 위기를 촉발시켰던 당시 금융기관의 행태를 빼닮았습니다.
보수 진영으로부터 '좌빨'이라는 비판을 들음과 동시에, 진보 진영으로부터는 '왼쪽 깜빡이 넣고 우회전한다'고 공격받은 노무현 정부는 IMF 외환위기를 교훈 삼아 금융권의 대출 건전성을 치밀하게 모니터링했어야 했습니다. 정작 과잉된 유동성이 부동산 부문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방치한 상태에서, 세금으로 부동산 투기를 때려잡으려고 했으니 소모적인 저항만 부른 것입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현 정부의 위기 관리·대처 능력입니다. 거듭되는 증시 폭락을 바라보며 시중의 우스갯소리는 현 상황을 자조적으로 조롱합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가장 좋아하는 관용차는 '사이드 카'이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은 '서킷 브레이커'라고. IMF 외환 위기 당시 재경원 차관을 지낸 그는 지난 10년 동안 무슨 경제 공부를 했던 걸까요.
배에 구멍이 난 상황인데도 진 자리, 마른 자리 가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중산층의 소비가 살아나야만 이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데도 소수 기득권층이 더 많이 가져가겠다며 탐욕을 부립니다. 지방은 아사 직전인데 그래도 형편이 더 나은 수도권·강남이 더 아우성입니다. 정부 정책도 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 합니다. 여당의 경제 한 브레인은 "지방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서울보다 낮추는 '지역별 차등 최저임금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합니다. 지방은 물가가 싸니 서울 사람보다 임금이 낮아야 한다는 논리에 말문이 막힙니다. 이래가지고서야 우리는 골디락스의 죽을 언제 다시 먹어볼 수 있을까요.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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