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7일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전용기 안이다. 만면에 미소 가득한 후진타오가 외교부장 양제츠의 브리핑을 듣고 있다. 워싱턴 G20회의, 페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마치고 그리스를 거쳐 귀국하는 길이다. 너무나 흡족한 성과에 비행기가 아니더라도 날 것 같은 후진타오다. 미국 본토 공격과 중남미 기습작전이 완벽하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장 워싱턴에서 열린 G20회의(15일), '울며 겨자 먹기'로 초대한 미국을 초토화시켰다. 은근히 풀어헤친 돈 보따리에 유혹된 불나방들을 국제통화기금(IMF)과 협력하여 세계금융위기를 진화하겠다는 호언장담으로 몽땅 제압했다. 그리고 다들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중남미를 기습 공격했다. 원래 APEC정상회의가 22~23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후진타오는 17일 중남미에 도착, 종횡무진 전장을 누볐다.
전통적인 혈맹국 쿠바를 방문하여 위로하고 선물을 하사했다. 지난여름 허리케인으로 피해를 본 쿠바의 복구를 위해 건설자재를 지원하는 내용을 포함하여 12가지의 사안에 대해 합의했고, 쿠바산 설탕과 니켈 수입문제를 논의했다.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전 의장과 만난 자리에서는 쿠바의 대중(對中) 채무상환을 연장하고, 쿠바의 병원 현대화 사업 지원을 위해 약 8천만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다. 미사여구를 총동원하여 우호를 다지는 맹세도 했다. 영원히 좋은 친구, 좋은 동지, 좋은 형제관계를 유지하자고 손가락을 걸었다. 문화, 교육, 위생, 체육, 여행 등으로 협력영역을 확대함으로써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협력의 틀을 마련하였다.
코스타리카를 방문해서는 수교 1년 동안 양국이 진행했던 양자, 다자관계 교류에 대해 만족을 표시했고, 상호신뢰와 협력을 강화한다는 데 합의했다. 기초설비, 농업, 전기, 통신, 에너지 부문의 협력을 약속하면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시작한다는 데 합의했다. 2009년 1월 19일 자유무역을 위한 회담을 개최하고, 2010년 5월 이전 FTA를 체결하기로 했다. 중국의 페트로차이나(中國石油天然氣集團公司)와 코스타리카 국영석유공사(RECOPE) 간에 합자협정이 체결되어 중국과 코스타리카 수교 이래 첫 번째 석유가스 협력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중국의 페트로차이나는 중남미 에너지사업에서 중요한 거점을 확보하게 되었다.
페루와는 그동안 진행되어왔던 FTA협상을 마무리 짓고 협정에 조인했으며, 공식적으로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수립했다. 페루 국회에 출석하여 행한 '새로운 시대 중국과 중남미의 전면적인 협력동반자관계를 수립하자'는 제목의 연설에서는 중남미 발전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경제무역관계뿐만 아니라 정치관계, 국제문제, 사회영역, 인문영역으로 교류의 폭을 넓히고 인식을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파죽지세 같았던 후진타오의 중남미 방문을 가시적인 성과만으로 폄하하자면 "고작 몇 개의 중남미 국가를 방문했을 뿐인데…"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쿠바, 페루, 코스타리카가 미국의 앞마당인 점을 고려하면 문제가 다르다. 채 열흘도 안 되는 기간에 후진타오는 70여 차례의 행사에 참석했고, 30여개 항목의 협력협의 사항에 조인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허리를 순식간에 장악해버린 것이다. 이것은 과거 쿠바 미사일위기 당시 소련이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소련과 다르게 미국, 러시아, 일본의 대표들을 만났다. 이는 그들로부터 묵시적 동의를 얻은 셈이 된다. 참여국 중 가장 부유한 국가는 아니지만 가장 여유롭고, 왠지 나누어줄 것 같은 넉넉함을 보임으로써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았다. 이는 중남미 국가들로부터 자발적 동의를 얻었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쿠바를 방문함으로써 남미 좌파정부들의 정치적 리더로 자리매김했고, 코스타리카와 관계를 정립함으로 중남미의 에너지를 확보했다.
자존심 강한 서방언론들이 후진타오 주석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고, 부러움과 시기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 같은 비용, 같은 시간을 투입해서 같은 회의에 참석했던 실용정부의 행보는? 뒤늦게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을 만난 우리 대표가 페루와 FTA 협상을 하기로 했단다. 그나마 뒷북이라도 쳐서 다행이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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