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복거일의 시사코멘트] 대한민국의 정통 이념

우리 사회에선 이념적 논쟁이 늘 활발하다. 이번에는 중등교육용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두고 이념적 논쟁이 나왔다.

지금 고등학교에서 쓰이는 교과서들은 거의 다 '좌편향'이 뚜렷하다. 그 교과서들은 대한민국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낸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주로 실패를 통해서 조망되고 대한민국 시민들이 이룬 성취들은 갖가지 형태로 폄하된다. 반면에, 그 책들은 북한에 대한 호감을 감추지 않는다. 북한은 처음부터 올바르게 출발한 사회로 그려지고 북한의 지옥같은 상황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그런 사정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성취를 제대로 기술한 교과서의 출현을 불렀다. 그러자 좌파에선 거꾸로 '우편향'이 심각하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 문제에 대해 옳은 판단을 내리려면, 우리는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가 이념적으로 중립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향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유로운 사회를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이루려 애써야 한다.

흔히 '우파' 또는 '보수'라 불리는 자유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정통성을 지닌 이념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족사회주의와 같은 좌파 이념들은, 좋게 말해서, 대안적 이념들이다. 우리 사회에선 자유주의와 다른 이념들이 동등할 수 없다. 자유주의는 정설(orthodoxy)이고 다른 이념들은 모두 이설(heterodoxy)들이다. 우리 사회의 공식적 지식을 담는 교과서들은 당연히 정설인 자유주의에 따라 쓰여져야 한다.

좌파 이념을 따르는 지식인들은 이 점을 흐리게 하려 애쓴다. 그들은 우파 이념과 좌파 이념이 동등한 대접을 받아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에 좋다고 늘 외친다.

그들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비유를 즐겨 쓴다. 비록 그럴 듯하지만, 이 비유는 완전히 그르다. 새의 날개는 물리적 운동을 위한 물체다. 이념은 사회 조직에 관한 생각이다. 둘 사이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여기서 연관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은 새의 날개를 통제하는 것은 새의 뇌며, 뇌가 좌우로 분열되면 새가 날지도 살지도 못하리라는 사실이다.

'심장은 왼쪽에 있다'는 비유도 자주 나온다. 고대 서양에선 감정이 심장에 깃든다고 여겨졌고 여러 언어들에서 '심장'은 감정과 동의어가 되었다. 그런 사정에 기대어, 이 비유는 좌파가 우파보다 감정적이고 인간적이라고 암시한다. 서거한 외우 정운영 교수가 내놓은 이 비유는 매혹적이지만 실은 겹으로 그르다.

좌우파라는 명칭은 서양에서보다 급진적인 정당의 구성원들이 의회의 왼쪽에 자리잡고 보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오른쪽에 자리잡는 역사적 우연에서 나왔다. 그런 역사적 우연과 대부분 사람의 심장이 왼쪽에 있다는 생물학적 사실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겠는가?

게다가 이제는 누구도 심장이 감정이 깃든 곳이라 믿지 않는다. (인공 심장을 달면 감정이 사라지리라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정 교수 자신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렇게 겹으로 그른 비유가 많은 지식인들을 붙잡은 덫이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정통성을 지닌 이념은 자유주의며 다른 이념들은 동등한 자격을 주장할 수 없다. 교과서엔, 특히 어린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엔, 정설만이 실려야 한다. 이 두 사실을 고려하면, 역사 교과서에 관한 논란은 쉽게 정리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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