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제·경영환경이 전개되면서 대구경북 기업들이 예년같으면 벌써 수립했던 내년도 사업계획의 윤곽조차 잡지 못하고 초긴축·비상경영만을 위한 경영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건설업계 '안정적 생존'이 목표
건설사 관계자들은 "수익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대다수 건설사들의 관심사"라며 "수주 물량도 관급공사나 BTL사업 등에 주력하고 주택 신규사업은 기존 수주 물량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자제한다는 것이 공통된 방침"이라고 전했다.
화성산업은 지난 2005년 이후 매년 3~4개 아파트 단지를 분양했지만 내년에는 수도권 지역내 1개 단지만 분양할 계획이다.
주택 비중이 높던 건설사들의 매출 구조도 바뀔 전망. 화성산업 경우 올해까지 주택부문 매출이 평균 50% 이상을 차지했지만 내년부터는 20% 정도로 줄어들고 공공 발주 턴키공사나 BTL사업 등 일반 건축·토목 부문 매출이 80%에 이를 예정이다.
올 상반기 기준 전국 도급순위가 101위인 태왕은 올해 두개 아파트 단지 준공을 마쳤지만 추후 분양 계획은 전혀 세우지 못하고 있다. 태왕은 내년 매출은 지난해보다 절반 정도 줄어든 1천억원 안팎 수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예상 매출이 1천900억원 정도인 서한도 내년 아파트 분양이 없으며 대신 BTL과 턴키, 환경 분야 신사업 등에 주력해 매출을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올 매출이 1천억원 정도인 SD건설은 현재 시공중인 1개 아파트 단지를 빼고는 신규 단지 분양이 없으며 이미 수주한 죽곡 2지구 도시공사 아파트 공사와 고속철 정비 사업 등 공공 발주 공사에 주력할 예정이다.
한라주택도 주택분야는 현재 시공중인 1개단지 공사만 유지하고 공공부문 공사 위주로 경영계획을 잡고 있으며 신사업으로 생수사업에 진출할 방침이다.
건설협회 대구시회 정화섭 부장은 "지역 건설사들은 IMF를 겪으면서 체질이 강화됐고 주택 부문 비중을 줄여와 큰 위기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역 전체 매출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섬유·패션 일부기업은 공격경영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대미 수출이 50% 가까이 급감한데다 내수시장마저 얼어붙으면서 대부분의 섬유업체는 내년도 사업계획을 확정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원사와 제직업계는 세계 최대 수요처인 중국의 섬유산업이 침체하면서 중국산 폴리에스테르 화섬사 재고증가로 가격이 붕괴되고 세계적인 불황으로 수출 오더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염색업계도 국내와 미국 시장의 경기침체로 주문량이 줄면서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 내년에는 더 악화될 것으로 보고 비상경영을 위한 사업전략을 마련중에 있다.
삼일방직의 한 간부는"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 위축 등으로 주문량과 가동률 하락이 예상돼 최대한 비용을 절감하는 쪽으로 사업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했다.
염색업계 한 임원은 "지난해만 해도 24시간 주야 3교대 근무를 할 정도로 호황이었으나 요즘은 밤 10시까지 2교대 가동을 하고 있다"면서 "내년에는 일부 감원 등 생존을 위한 경영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면 (주)성안 박호생 부사장은 "내년 상황이 워낙 불투명해 방향 설정이 어렵지만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기 위해 다소 공격적인 경영으로 사업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패션업체인 (주)혜공 김우종 대표도" 내년에는 브랜드'도호' 매장을 현재 32개에서 서울에 한두곳 더 개점하고 중국 고급 백화점 입점과 미국 뉴욕 및 유럽 시장 진출도 시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계금속 및 자동차 부품은 한숨
매출액과 종사자수 기준으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기계금속과 자동차 부품업계 주요 기업들도 아직 내년 사업계획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내수는 물론 국제경기 상황과 환율 등 불투명한 경영변수들이 너무 많기 때문.
성서·달성공단 등의 주요 기계금속 업체들은 내년 상황이 올해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예상 매출과 투자 및 인력 채용 계획 등 사업 계획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창산업 손일호 회장은 "신규투자와 인력 채용 등을 통한 사업 확장은 기대할 수 없고 안정적으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익THK의 한 임원은 "내년은 올해보다 더 악화될 것으로 보여 신규 투자는 최대한 줄이고 교육 및 훈련에 중점을 둬 '강한 임직원'을 만드는 것이 사업계획이라면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델파이 한 간부도 "GM대우차의 사업계획이 결정되는대로 계획을 수립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내년 시장 상황이 예측불허여서 상황에 따라 월별 또는 분기별 등 단기 운영 계획 위주로 계획을 만들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자 그때 그때 달라요 '시나리오 경영'
구미의 모바일, 디스플레이 등 전자업계는 이달 중순 이후 대대적인 조업 감축에 들어갈 계획이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추진중이던 각종 사업조차 잠정 보류한 상태에서 내년 사업계획 확정은커녕 사업계획을 짜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은 성탄절부터 내년 4일까지 생산부서를 중심으로 동계휴무를 늘려 가질 계획이다. 주문량 감소에다 성탄절 다음날인 26일과 1월 2일이 모두 금요일이어서 관리직을 제외한 생산부서를 중심으로 장기 휴무에 들어갈 계획을 세웠다. 이 회사 한 관계자는 "오죽하면 내년 사업계획을 짜는 것보다는 그때 상황에 따라 움직인다는 '시나리오 경영법'이란 새로운 용어가 나왔겠냐"고 반문했다.
LG전자를 비롯한 구미지역 LG계열사들 역시 성탄절을 전후, 권장 휴무를 가질 예정이며 일부 계열사는 15일부터 조업을 중단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들의 휴무 계획으로 중소 협력업체들은 이미 지난달 말부터 부분 휴업에 들어갔다. 상당수 업체는 오는 15일쯤 휴업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노동청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 일시휴업에 들어가는 업체도 급격히 늘어 PDP, LCD 등 디스플레이 업종을 중심으로 5일 현재 67개 업체가 휴업신고해 이중 55개 업체가 일시휴업 중에 있다.
◆철강 메이저와 군소업체 양극화
철강업계도 내년 전망이 사상 최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철강 대기업들은 한결같이 "10년 전 IMF 당시는 국내에 한정돼 수출을 통해 채산성을 유지했지만 이번에는 내수와 수출 모두 부진하고 주력 수출시장인 미국의 침체 정도가 심해 극히 어렵다"고 분석하고 있다.
포스코는 '움츠리지 않겠다'는 방향을 잡았다. 6조원에 이르는 내년도 투자사업(연구·개발 및 신규투자)은 모두 예정대로 시행하고 판매난은 신시장 개척을 통해 타개하기로 했다.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을 대체할 곳으로 유럽과 아프리카·남아시아 등을 꼽고 있다.
현대제철은 충남 당진에 짓고 있는 일관제철소를 예정대로 내년 연말부터 본격 가동한다. 당장은 현대제철이 포스코의 경쟁상대가 되기는 버겁지만 경쟁구도 형성은 국내 철강업 시장에 큰 판도변화를 동반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국제강은 조선 기자재인 후판부분을 강화해 위기를 극복한다는 전략이지만 후방산업인 조선업의 업권상황이 예측 불가능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른 철강 분야는 극심한 침체가 불가피하다. 산업기계·파이프·자동차 등 일반 소비재 산업의 전세계적인 불황이 단기간내 해소되기 힘들기 때문. 이 때문에 '초긴축 경영' 말고 다른 원칙이나 전략이 없는 실정이다.
◆호텔은 공격경영
극심한 경기침체에도 지역 호텔들은 사업다각화를 하면서 공격경영에 나설 움직임이다. 객실, 웨딩, 나이트클럽, 주점 위주에서 골프장, 외식산업, 쇼핑몰 등으로 업종을 다각화하고 있다.
호텔인터불고는 최근 그룹 임원인사를 단행, 권영호 회장 중심의 원톱체제를 개편해 국내산업본부와 해외산업본부로 분화했다. 2007년 경산에 인터불고경산CC를 세운데 이어 원주에 골프장과 호텔을 결합한 휴양단지 조성에 나섰다.
도심권 비즈니스호텔을 지향하는 노보텔대구센터도 연말이나 내년 초쯤 그랜드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웨딩홀(부띠크 하우스웨딩센터), 객실영업을 시작한 데 이어 19일엔 나이트클럽(아미고호텔 지하의'B&B'가 이전)이 문을 연다. 또 지하1층에서 7층까지 종합쇼핑몰을 입점 시켜 투숙객들에게 원스톱쇼핑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세인트웨스튼호텔은 내년 봄 군위세인트웨스튼CC를 개장한다. 안용해 이사는"투숙객이 성서·구미공단에서 온 외국바이어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숙박과 골프장을 연계해 서비스를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업체 연수 전문호텔로 특화를 선언한 팔공산온천관광호텔도 최근 주변의 인터불고팔공을 인수해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마쳤다. 제이스호텔도 경기도 죽산에 에덴블루CC를 완공하고 개장을 준비중에 있다.
이창희·박정출·이재협·한상갑·김진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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