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의 해가 서서히 저물어간다. 명칭에서부터 행사의 성격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논란이 없지는 않았지만 한 시대의 획을 나름대로 그었다는 의미만큼은 누구도 쉽게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2008년은 무엇보다 성공한 대한민국 60년 근대화 혁명을 축하하는 해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가치고 대한민국처럼 짧은 기간에 국가건설과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와 같은 일련의 근대화 프로젝트에 모두 성공한 국가가 있으면 어디 나와 보라는 기세였다.
사실이 그랬다. 가혹한 식민지 끝에 맞이한 광복은 미증유의 민족분단과 겹쳤다. 그리고 민족분단은 다시 피비린내 나는 동존상잔을 불렀다. 바로 그처럼 열악한 바탕 위에서 대한민국은 세계 굴지의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했다. 한때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통치로 얼룩졌던 민주주의도 최근 20년째 순항 중이다.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한반도에 명멸했던 어떤 국가보다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정치적으로 민주적이며 군사적으로 막강한 나라가 되었다. 대한민국 60년사는 제3세계의 근대화에 관하여 '글로벌 모델'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그런데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대한민국 60년 기적'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마음 한구석에서 조금씩 공허해지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금년 한 해 내내 대한민국 회갑상은 성대하고 화려했지만 지금 당장이 지독히 어렵고 막상 내일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다. 혹시 정권이 바뀌면 나아질까 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가 딴에는 약간 남달랐다. 하지만 '경제 살리기'는 빛을 바랜 지 오래고 사회통합에 있어서도 나아진 건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10년 전 IMF 위기의 망령이 다시 엄습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처지다.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고 내일에 대한 전망 또한 결코 밝지만은 않은 현실에서 '대한민국 60년의 기적'을 계속 말하는 것은 자칫 '남의 집 이야기' 혹은 '그들만의 잔치'로 보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성취와 개인의 성공을 별개로 느끼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대한민국 60년의 기적'을 일궈낸 주역들은 지난날에 대한 자부심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위기와 불안한 미래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성공한 대한민국 60년 그 이후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최소한 두 가지다. 첫째 지난 60년간 대한민국은 '헝그리(hungry) 사회'로부터의 탈출은 성취했지만 그 대신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앵그리(angry) 사회'에 임하고 있다. 국민의 대다수가 절대빈곤으로부터는 벗어났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박탈감이나 패배의식, 혹은 적대감이나 소외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떤 설문조사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신이나 타인을 부자로 인정하는 이른바 '부자 커트라인'이 26억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실제 그 정도 부자는 전체 인구의 1%에도 못 미치는바, 국민의 절대 대다수는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그 때문에 남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이다.
둘째는 대한민국 60년 그 이후를 이끌어갈 미래 세대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소위 '착한 아이 세대'(good boy generation)는 청(소)년 특유의 진취적 야망을 결여하고 있는 상태다. 그들 다수가 진보좌파 이념의 덫에 걸려 절대적 평등주의와 폐쇄적 민족주의, 그리고 맹목적 평화주의 정서에 깊이 물들어 있다. 이 땅의 청(소)년들이 대한민국 60년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을 잃고 세계를 향한 개척정신과 미래에 대한 도전정신을 멀리한다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沙上樓閣 (사상누각) 아니겠는가. 전국의 청소년 다섯 가운데 한명 정도가 10억원을 갖게 된다면 10년쯤 감옥에 가도 좋다고 응답했다는 최근의 한 사회조사 결과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관련하여 만감이 교차하게 만든다.
성공한 대한민국 60주년을 떠나보내는 지금 이 시점이 필요로 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자긍과 도취가 아니라 반성과 성찰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말하고 꿈꾸는 과정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고 동참하는 일이다. 특히 성공한 대한민국 60년사로부터 소외되어왔던 계층, 그리고 한국사회의 새로운 주역이 될 청년세대의 공감과 협력은 절대이다.
전상인(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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