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를 화가들이 자주 선택하는 이유는?

우리 민족성과 너무 닮아

▲위에서부터 손만식 작, 박수근 작
▲위에서부터 손만식 작, 박수근 작 '소와 유동', 사석원 작, 운보 작, 이중섭작.

한국의 화가들이 가장 즐겨 그리는 동물은 소다. 소가 주는 이미지가 우리의 정서와 맞을 뿐 아니라 우리의 생활과 동떨어질 수 없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마침 내년이 소의 해다. 소를 그리는 작가들과 왜 그들은 소를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봤다.

■ 그들은 왜

한국의 그림에 소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중요한 동물이며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라는 점이다. 또 소가 주는 이미지가 순박함과 우직함을 동시에 가진 우리 민족성과 닮았기 때문에 감정 이입이 그만큼 쉽다는 것도 소를 자주 그린 이유다. 또 소가 가지는 조형미는 역동성과 기를 표현하기 더없이 좋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

동물을 그리는 화가 사석원은 " 소는 한 집안의 희망이면서 가족의 구성원과 다름없다. 그런 의미에서 가축이나 재산 이상의 의미를 가졌으며 우리 정서와 기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동물이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소'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민족성에 가장 적합한 소재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이중섭'이라는 그림자가 너무 짙기 때문이다. 청도에서 싸움소를 그리고 있는 손만식은 "소를 그리는 것은 청도에서 태어난 예술가의 숙명 같은 것이다"고 말한다.

■ 소를 그리는 화가들

소 그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는 이중섭(1916~1956)이다. 이중섭의 소에는 색보다는 선을 중시, 그림 속에 율동과 역동성이 넘치는 생명력이 살아있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 민족의 분노를 상징하는 동물로 황소와 흰소를 택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소에는 민족의 슬픈 역사뿐 아니라 작가 자신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평생을 그리워한 고향에 대한 감정이 드러나 있다.특히 노을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고향 평안남도 평원군의 빨간 노을을 뒤로하고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슬픈 황소'는 마치 우리 민족의 고통과 작가의 처지를 표현한 것 같아 애처롭기조차 하다. 추사체의 필획을 느낄 만큼 강한 필력으로 그려낸 '흰소'는 살아있는 듯한 거친 숨을 내쉬며 분노하듯 넘치는 생동감을 주면서 범접하지 못할 위엄마저 띠고 있다.

빨래터의 작가 박수근(1914~1965)은 동물 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한가로이 누워있는 소 한마리가 화면 윗부분을 꽉 채운 그림 '소와 유동(1962년)'이 있고, 근대 한국화가였던 김기창(1913~2001)은 청산도에서 소를 자주 그렸다. 소가 클로즈업된 그림이 있는가 하면 작품 속에 작게 등장하지만 소를 타고 있는 한가로운 목동이나 촌부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최근 블루칩 작가로 떠오른 사석원도 소를 자주 그리고 있다. 그의 그림 소재들은 닭 부엉이 까치 개구리 토끼 등 다양하지만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는 힘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귀엽기조차 하다. 이는 그의 작품 속 동물들이 축사에 갇혀 인간의 필요에 따라 사육된 모습이 아니라 본능에만 충실한 야생의 자연상태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작업은 설화적, 우화적인 요소가 두드러지게 가미되고 있다. 미술평론가 이재언은 '사석원 그림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그들의 본능이 작가의 의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있다'고 했다.

싸움소를 그리는 청도의 작가 손만식(44)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소싸움을 보고 자란 손만식은 싸움소를 통해 우리 민족이 걸어온 삶의 애환을 표현하려 한다. 승리의 순간이 주는 기쁨, 패배의 슬픔 등과 싸움소를 통해 강건한 힘과 민족의 강인함을 작품 속에 담고 있다. '소만식'으로 통하는 그의 소는 사실적 현장감이 듬뿍 담겨 생동감이 넘친다.

김순재기자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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