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洞에 사는 게 무슨 죄?

얼마 전 대구 수성구청에서 보도자료 하나를 받았다. 12월 3일에 범물권 구립도서관 기공식을 연다는 내용이었다. 유독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생활권역별 도서관 설치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됨에 따라… 2009년 말까지 순차적으로 개관하는 7개의 도서관'. 대구의 공공도서관이라야 구별로 1, 2개뿐인데, 갑작스레 수성구에만 7개가 문을 연다니.

문득 얼마 전 확인했던 수치가 하나 떠올랐다. 77대 5. 2008학년도에 서울대에 합격한 수성구와 서구의 수험생 숫자다. 서울대 합격자 수가 지역 간 학력을 비교하는 근거로 취약하고, 고교 숫자가 13대 4로 차이가 나는 점을 감안해도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 차이다. 게다가 서구 4개 고교 중 합격자 2명이 2개교, 1명이 1개교였는데, 수성구는 13개 고교가 최소 1명에서 최대 13명(3명 이상 10개교)까지 골고루 분포해 있었다.

케케묵은 이야기로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최상위권 학생들의 서울대 진학률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10년 전(1999학년도)에 수성구와 서구의 합격자 수가 161대 7이었던 걸 보면 더 나빠지진 않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유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지역 평생교육의 요람이 되는 도서관 시설마저 지역별로 격차를 보인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곳이 아니라 지식기반사회의 필수적인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2007년 말 현재 대구에는 17개의 공공도서관이 운영되고 있는데 2010년까지 규모가 큰 5개의 공공도서관이 추가로 건립된다. 동구와 북구, 달서구에 하나씩, 수성구에 2개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수성구의 7개 도서관이란 지난달 착공한 범어권 구립도서관과 범물권 구립도서관에다 수성동·중동·파동 등에 짓는 어린이 도서관을 포함한 것이다.

서구에서도 내년 말 서구어린이도서관이 준공돼 이용객이 미어터지던 서부도서관이 한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서구어린이도서관은 1천600㎡ 규모. 범어와 범물 도서관이 각각 9천800㎡, 4천500㎡ 규모인 것과 비교하면 답답한 노릇이다. 수성구, 달서구 등이 소규모 어린이 도서관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는 것과 비교해서도 아쉬움이 크다.

이런 차이는 살림살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서구의 인구는 2007년 말 현재 23만7천757명으로 수성구 44만7천164명의 53%다. 그러나 문화예술 예산은 서구 8억5천만원, 수성구 43억8천만원으로 5배 이상 차이가 난다. 수성구에는 서구에 없는 교육 분야 예산을 별도로 잡아 6억8천여만원을 배정했다.

이런 격차는 비단 서구와 수성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구 내에서도 중구와 동구, 남구가 서구 못지않게 여러 가지 면에서 열악하고 같은 수성구, 달서구 내에서도 동에 따른 차이가 뚜렷하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해 누구도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8일로 예정했던 지방균형발전대책 발표를 일주일 연기했다. 직전에 열린 시·도지사 회의 요구와 여론 등을 반영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큰집에 앓는 소리를 하는 작은집도 속내를 보면 그리 떳떳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지방에 사는 게 무슨 죄냐"고 떠들기 전에 "어느 구, 어느 동에 사는 게 무슨 죄냐"는 하소연부터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논리에 일관성이 생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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