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은 이 나라에 참여정부가 떠나고 새로운 실용정부가 탄생한 해였다. 이 새로운 정부는 실용과 자율에 입각한 선진화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이 정부는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걷어치우고 실용을 추구함으로써 국민들이 실제로 생활 속에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고, 모두에게 분권과 균형보다는 자율을 제공함으로써 누구나 자주적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정부가 내건 이런 약속과 다짐에 기대를 하면서 지난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간데온데없고 그들은 추운 몸과 마음으로 차가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지방에 거주하는 우리들은 더욱더 가난해지고 중앙에 예속되고 있다. 실용은 빈곤으로 되돌아오고, 자율은 예속으로 다가오고 있다. 근자에 현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자 하는 '수도권 규제완화'가 그러하였고, '세계수준의 연구중심 대학(WCU)'이 그러하였으며, 로스쿨이 그러하였다.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를 하려는 흐름이 세상에 흘러나오자 지방은 더욱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미 구미의 전자단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지방의 경제는 휘청대고 있다.
지난 WCU 과제 최종 선정 발표가 있었을 때 지방대학은 거의 배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학자를 전일제 교수로 채용하여 새로운 전공이나 학부를 개설할 수 있는 제1유형 과제 총 26개 중, 지방의 포스텍, 한국과학기술원, 광주과학기술원을 제외하면 지방대학 중 그 어느 대학도 지원을 받지 못했다. 또한 법학전문대학원 최종 합격자 발표에서도 지방대학 법학전문대학원에 합격한 학생들 중 무려 70%에 가까운 학생들이 수도권 출신이었다. 제주대학에는 단 한 명도 제주도 소속 대학생이 법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 중 과연 누가 자신이 태어난 지역의 대학을 가려고 하겠는가?
이처럼 지방은 버림받은 지역이 되어 가고 있다. 힘이 넘치는 유능한 젊은이들은 서울로 떠나고 지방은 오갈 데 없는 연약하고 무력한 자들의 땅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결과를 볼 때, 실용성과 자율성을 통해 선진화를 주장하는 논리에는 능력 있는 자들을 먼저 지원하여 이들이 벌어들인 수입을 통해 변방의 가난하고 무능한 자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뜻이 내재되어 있다. 또한 여기에는 아직도 타자에게 의존하여 무력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긴장과 경쟁을 부과함으로써 이들이 경쟁력 있는 존재로 거듭나게 하고자 하는 뜻도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과연 옳은가? 아니 옳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현실화될 수 있을까? 수도권 규제 완화가 현실화될 경우, 지역의 실업자는 급속하게 증가할 것이고, 지역은 인구가 유출되어 공동화 현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많은 나라들의 결과가 실제로 보여주듯이, 이는 오히려 국가 전체의 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현재 학계에는 1천650억 달러나 되는 엄청난 돈을 지원하여 실시하는 WCU사업도 국내외의 현실적 여건으로 인해 정년퇴직을 하였거나 정년에 가까운 외국학자들에게 지원됨으로써 이들에게 노후대책을 마련해준다는 비아냥거림도 존재하고 있다. 이번 사업의 선정 결과는 지방대학은 시골 서당이나 운영하라는 서글픈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한 이런 분위기는 법학전문대학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국 한국의 지방대학을 모두 서울의 분교로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올 한 해는 버림받은 지방의 시대였다. 정부는 중앙이 돋보이는 것은 지방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새겨 보아야 할 것이며, 지방의 죽음은 곧 중앙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현실을 다시 한 번 고뇌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실용도 좋지만, 사람다운 이념을 실현하는 실용이 되어야 할 것이며, 자율도 좋지만 자립하지 못하는 약자들과 함께하는 연대를 구현하는 자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념이 없는 실용, 연대가 없는 자율은 약자는 죽고 강자만 사는 정글의 세계를 만들 뿐이다.
김석수(경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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