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바다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것이다. 바다가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바다의 주인이 된다. 늘 그 자리에 있는 바다이지만, 바다는 그들의 몸속으로 들어온 온갖 것들의 낌새를 어김없이 눈치챈다. 바다는 그들을 범하려는 무리들에게는 두려운 존재가 되어 통제하지만, 그 안에서 함께하는 주인에게는 넉넉한 품으로 감싸안아주며 한없이 온순해진다.
김성도 이장 부인 김신열씨는 정이 많다. 40년 전 독도로 물질하러 온 김씨는 최종덕 사장 몰래 독도경비대원들이 먹을 수 있도록 전복이나 소라 한 망태를 바위 틈에 숨겨두고 오곤 했다. 그래서 독도경비대를 거쳐 간 사람은 김씨의 따스한 정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지금도 칠순의 몸으로 동도, 서도 온 독도 식구들을 챙긴다. 독도경비대원들에게 홍합밥 한끼 대접하는 것은 기본. 등대 사람들 집안 사정까지 마음을 쓴다.
김씨는 명실상부한 독도 안주인이다. 3층짜리 어업인숙소를 관리하고 수시로 들이닥치는 손님들 뒤치다꺼리하기가 버겁다. 독도 사람들의 안주인 노릇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엊그제 저녁상에 혹돔 매운탕이 올라왔다. 얼마 전 커다란 혹돔이 한 마리 잡혔는데 '개똥머구리'가 운좋게 건져올린 것이다. 머구리는 잠수부를 일컫는 속어인데 '개똥머구리'는 김성도 이장이 신출내기 스쿠버다이버에 붙인 별명이다. 어깨너머로 스쿠버를 배운 초보 다이버는 모두 '개똥머구리'이다.
'개똥머구리'가 잡은 이 혹돔은 이마에 주먹만한 혹이 달린 길이 80㎝, 무게 30㎏ 정도의 엄청난 물고기였다. 비늘 하나가 거의 동전 크기만 하고 듬성듬성한 이빨이 어린아이 그것과 같았다. '개똥머구리'가 잡기는 했지만 처치 곤란으로 커다란 통에 담아 왔다.
혹돔을 본 김씨는 측은한 표정을 지으며 "저걸 잡아버렸나"며 섭섭해 했다. 그리고는 어린 아이처럼 혹돔 꼬리지느러미를 잘라 달라고 하더니 잘 손질해서 빨랫줄에 걸어 널었다. 부채만한 꼬리지느러미는 볼만했지만 김씨의 행동이 의외였다.
넌지시 떠본즉, 독도 주변에는 큰 혹돔이 대여섯 마리 사는데 그 놈들이 어디어디에 있는지 훤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녀석들은 늘 한자리에 있는 토착어종이어서 수중촬영 할 때 멋진 모델이 되어주기도 한다는 것. 해서 김 이장은 스쿠버다이버들이 물에 들어가기 전에 혹돔을 잡지 말라고 일러준다.
이번에 잡힌 녀석은 코끼리바위 앞에 있는 세 마리 중 한 마리이다. 이놈들은 김씨가 그쪽으로 물질하러 들어가면 어디 구석에 있다가도 쏜살같이 달려와, 작업하는 동안 잠수하면 같이 내려가고 수면으로 올라가면 같이 따라 올라가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는 놈들이 귀여워 김씨가 작업하는 동안 참소라나 홍합을 따서 먹여주면 이놈들은 넙죽넙죽 받아먹는다고 한다. 어떤 때는 일이 바빠 미처 챙겨주기 못하면 작업하는 옆에 와서 머리를 쿡쿡 쥐어박고 꼬리를 일렁거려 구정물을 일으켜 작업을 못하도록 훼방 놓기도 한다고. 그런 만큼 몇 년을 두고 정이 듬뿍 들었다고 했다. 그걸 알 턱이 없는 '개똥머구리'가 그냥 잡아버린 것이다. 김씨는 아쉬움에 꼬리지느러미라도 잘라 말려 추억하고자 한 것.
독도 사람들은 바다의 것들과 서로 소통한다. 그물이 발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괭이갈매기를 잡아 실을 풀어주고 추위에 굶주린 청둥오리를 방 안에 데려다 먹이를 준다. 그뿐만 아니라 풀 한 포기, 바윗돌 하나 심지어 물속에 사는 혹돔까지도 서로 친구하여 지내는 것이다.
이렇듯 독도의 바다는 김성도 이장 내외를 넉넉하게 품는다. 김 이장 내외 또한 독도 바다의 품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또 그 안에 안긴 것들과 더불어 소통하며 살아간다. 그 삶은 '독도는 우리땅' 을 운운할 필요조차도 없이, 지금 이 순간 독도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다 스스로가 명백히 일러주는 증거들이다. 김성도 이장은 독도리 주민들의 이장일 뿐만 아니라 바위와 풀, 새, 물고기들의 이장이기도 하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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