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시장은 국가권력에 대항한 죄인들을 처형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죄를 응징하는 현장을 군중들에게 보임으로써 경고의 메시지를 극대화하고, 당대의 가치관과 지배질서를 공고히하기 위한 전근대적 지배 장치의 하나였다. 기록된 것만 해도 시장에서 거열(팔 다리를 수레에 묶어 찢어 죽이는 형벌), 참수, 기시(목을 베고 시체를 길거리에 버리는 형벌), 효수 등 다양한 형벌이 적용됐다. 우리가 잘 아는 성삼문, 이개, 하위지 등 사육신도 죽은 다음 시장에 효수되었고, 남이 장군과 그의 어머니 정선공주 또한 시장에서 거열형이라는 참혹한 형벌에 처해졌고, '홍길동전'의 허균도 시장거리에서 처형됐다.
시장은 '시대를 진열하는 창'이다. 단지 물품 거래를 위한 공간뿐 아니라 각 시대의 정세, 문화, 습속에 따라 다양한 풍경이 연출됐다. 나랏일의 희로애락을 함께하거나, 가뭄을 물리치기 위해 시장 문을 닫거나 옮기기도 했다. 또 시장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넘쳐나 숱한 사건사고와 범죄의 무대가 되기 일쑤였고, 가난하고 딱한 사람들을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개항 뒤 식민지배가 강화되면서 민족적 차별과 억압이 자행되고, 함께 공분하던 곳도 바로 시장이었다.
이 책은 전통시대부터 현대까지 이 땅에 존재했던 시장의 역사와 시장에서 거래된 상품과 상거래 풍속, 다양한 상인들이 활동했던 시장풍경을 담은 교양서적이다.
삼국시대부터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에 걸친 전근대 시장까지, 시장이라는 공간과 상인이라는 주체가 펼치는 사회사, 문화사, 생활사의 파노라마를 한데 모았다.
고추와 고추장의 탄생으로 비로소 보급된 빨간 김치, 금지된 쇠고기의 밀거래, 목이 부러질 정도로 머리장식을 너무 과하게 한 여인의 모습, 불씨 보존이라는 업보에서 여성을 해방시킨 성냥, 조선인의 입맛을 장악한 일본 조미료 아지노모도, 그리고 마침내 등장한 '근대의 쇼윈도'로 불리는 백화점의 등장까지 시장이란 공간에서 벌어지는 파란만장한 문화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사진자료와 조선후기 시장의 판매 물품 목록, 신문에 나타난 신식물건의 광고 등 흥미로운 자료도 수록하고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주최한 2008년 우수출판기획안 공모전 당선작으로 지은이는 전북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436쪽, 1만9천800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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