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아빠가 알고 찾아올지 몰라서요. 제발 가명으로 해주세요. 부탁 드립니다."
'뇌병변 1급의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30대 여성'이라면 전국을 통틀어 몇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도 박경아(36·가명)씨는 끈질기게 당부했다.
이승희(9·여·가명), 준호(8·가명) 두 남매의 엄마 박씨는 웃음을 잃어버린 듯했다. '남편'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안절부절못하는 절망이 짓누르고 있었다. 돌아가고 싶은 평범한 일상은 너무 먼 과거가 됐다.
1998년 결혼할 때만 해도 박씨는 보통의 주부였다. 2000년 승희를 낳고 이듬해 준호를 낳았다. 이때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승희는 돌이 지나도록 걷지 못하고 말이 느렸다. 집안 어른들은 "엄마 뱃속에 동생이 있어 어리광 부리는 것"이라고 했다. 병원에서도 "발육이 조금 느린 아이들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두 돌이 되도록 승희는 혼자 걷지 못했다. MRI 촬영 결과 승희의 뇌신경에 손상이 있다고 했다. 준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준호마저 같은 증상을 보였다. 두 아이는 두 돌이 지나도 팔꿈치로 땅을 짚고 움직이는 게 전부였다.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남편이 일하러 가지 않고, 술 마시는 날도 늘어났다. 1년 뒤에는 남편을 피해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야했다. 친정에는 "애 아빠가 출장을 갔다"며 둘러댔다.
"아이들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그래서 더 강한가 봅니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지켜줄 수 없다는 생각말이에요."
친척들은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기라고 했다. "말도 못하는 애들을 어찌 키울 거냐"고 쉽게 말하는 이들이 야속했다. 비록 뇌병변 1급 장애를 안고 있는 두 아이지만 '엄마'를 인식하고 있으며 사물도 구분한다.
"승희는 자기가 먹던 수저가 아니면 안 먹어요. 밥 먹이는 사람이 달라져도 밥을 안 먹는 걸요. 준호는 엄마를 불러 원하는 걸 손짓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라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승희와 준호에게 영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의료진은 두 아이 모두 골반과 다리뼈 사이의 간격이 커 수술이 필요다고 했다. '어설픈 걸음걸이라도 혼자 걷기만 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에 500여만원을 들여 승희에게 수술을 시켰다. 하지만 수술은 실패했고 승희는 제 몸 어느 것도 까딱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그래서 박씨는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반듯이 눕혀놓기만 하면 승희의 등에 욕창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도 박씨는 준호의 수술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당장 수술비가 없고, 실패에 대한 걱정도 크지만 혼자 일어설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간절함이 그만큼 크다.
이들 가족의 수입구조는 뻔했다. 생계급여와 두 아이 앞으로 나오는 장애수당을 합쳐 120여만원. 하지만 빠듯하다고 했다. 매달 아이들 약값에 20만원, 차량유지비 20만원, 기저귀값도 20만원가량. 나머지 60만원은 채무이자와 생활비. 설상가상으로 금융권 빚이 1천만원, 지인들로부터 빌린 돈이 1천만원가량이라고 했다. 집 안에 화장품 하나 보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편견의 눈으로 쳐다보는 장애아의 엄마로 산다는 것이 쉽잖다는 박씨. 육체적 힘겨움도 만만찮아 보였다. 낮 동안 장애아 전담 어린이집에 맡겼다가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두 아이를 홀로 둘러메고, 휠체어에 싣고, 밀었다. 안쓰러워 보여 "도와주겠다"고 하자 '정중한 거절'이 '무섭게' 날아들었다.
"버릇 됩니다. 그냥 놔두세요." 작은 키의 박씨는 '그냥' 엄마가 아니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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