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아서 한잔, 기분 나빠서도 한잔. 술을 마시는 데는 저마다 사연이 있다. 그래서 기쁜 자리거나 슬픈 자리에서도 빠지지 않는 것이 술이다. 술의 害毒(해독)이 아무리 장황하고 섬뜩해도 많은 사람들이 그 달콤한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술 권하지 말기, 술잔 돌리지 않기 등 사회 운동이 일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술은 권해야 제맛이다.
술 하면 이태백이니 권주가도 역시 그의 '將進酒'(장진주)가 압권이다.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다로 바삐 흘러들어 다시 오지 못하는 것을/ 또한 보지 못하였는가 고대광실에서 거울에 비친 백발을 보며 슬퍼하는 것을/ 아침에 검은 머리가 저녁에는 눈처럼 하얗게 변해 버렸구나/ 모름지기 인생에서는 좋을 때 맘껏 즐길 일이니/ 술잔에 헛되이 달빛만 채워서야 되겠는가/ 하늘이 나를 태어나게 했을 때는 반드시 쓰임이 있었을 것이려니/ 재물이야 흩어져 없어져도 다시 돌아온다네/ …"
長安(장안)을 쫓겨난 이태백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자 기쁨에 이렇게 술을 권한다. 그 자신도 '그저 취하여 오래도록 깨어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대들과 더불어 (술을 마셔서) 만고의 시름을 녹여 보리라'고 노래했다.
조선시대 松江(송강)도 '장진주사'에서 '꽃 꺾어 算(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하고 권한다. 송강은 '인간이 죽으면 가마니 덮여 지게에 얹혀 가거나, 호화로운 상여에 많은 사람의 애도를 받거나' 마찬가지일 거라며 살아 있을 때 마시고 즐기라고 부추긴다. 더구나 땅에 묻힌 뒤면 누가 한 잔 권하겠느냐고 했다.
권주가라고 모두 인생 무상과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하지만은 않는다. 옹고집전에서 부르는 권주가는 이렇다. "… 이 술 한 잔 드시며는 천 년 만 년 사시리다. 이 술은 술이 아니라 한무제가 承露盤(승로반)에 이슬을 받은 것이오니 쓰나 다나 잡수시오."
올해도 다 간다. 현진건은 日帝(일제) 식민지시대 좌절하는 지식인을 통해 암담한 당시 사회가 술을 권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이 10년 전 IMF 시절보다 더욱 어렵다고들 한다. 술이 슬픔은 나누고 기쁨은 배가시키는 名藥(명약)이니 올 연말은 이래저래 술 권하는 핑계가 더욱 늘었다. 아무쪼록 올 송년회 술잔에는 한 해의 나쁜 기억들을 모두 담아 권하기를.
이경우 논설위원 the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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