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재 지표조사 '검은 거래' 드러나

"결국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아파트 건설사와 문화재 연구기관 직원간의 '비리' 고리가 드러나면서 관련 학계와 연구자들의 반응이다. 검찰 수사에서 건설사 편의를 위해 문화재 조사 범위와 조사 기간을 줄여주는 대가로 문화재 연구원과 건설사 간에 금품을 주고 받는다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졌다.

◆건설사 편의 봐주고 거액 받아=10일 대구지검 특수부에 구속기소된 전 경북문화재연구원 연구실장 L(46)씨는 중견 학자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대담한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지난해 11월 달서구 모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문화재 지표조사를 서둘러 해주고 조사 범위를 좁혀 달라는 청탁과 함께 시행사로부터 1억5천만원을 받는 등 2개 건설업체로부터 1억7천만원을 받아 챙겼다. 지난 2007년 5월에는 경북 포항 영일신항만 도로 공사 업체로부터 문화재 발굴조사 의뢰를 받은 뒤, 신속한 조사 착수를 해주는 대가로 자신의 지인이 이사로 있는 토목업체에 낙찰가를 사전에 알려주도록 요구해 33억원 상당의 토목공사를 하청받게 해줬다. L씨는 그 대가로 1천만원이 넘는 가족해외여행 경비를 제공받았다.

해외 유학파로 국내에서는 구석기시대 분야의 손꼽히는 학자로 이름을 떨친 그가 금품의 유혹에 넘어간 데는 대규모 건설사업에서 차지하는 문화재조사의 위력 때문이다. 건설사업을 하려면 반드시 문화재조사를 거쳐야 하는데, 조사가 지연되거나 문화재라도 발굴이 되면 건설사는 막대한 금융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보니 로비의 표적이 됐다.

경북문화재연구원 이재동 원장은 "이번 사건은 개인적 문제로 연구원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업체로부터 청탁 등을 받더라도 전문위원들을 중심으로 3, 4차례 회의를 거쳐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에 이뤄질 수 없다"며 "특히 지난 7월부터는 계약에서부터 조사의 전 과정이 공개되고 있다"고 했다.

◆건설사·문화재연구원간 구조적 비리=이번 사건은 대규모 건설사업 시행시 반드시 거쳐야하는 '문화재조사'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사업면적 3만㎡이상의 건설공사는 반드시 문화재 지표조사를 하도록 돼 있지만, 전문적 문화재 조사기관은 대구경북 3곳에 불과한 데다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2, 3년 전 건축·토목공사의 붐이 일었을 경우 문화재 지표조사를 받기까지 장시간 걸리기 십상이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축 붐일 때는 지표조사는 하루도 걸리지 않는데, 정작 신청 후 지표조사를 받기까지 한 달은 물론이고 심지어 2, 3개월까지 기다리기 예사였다. 이 때문에 조사기간을 앞당기기 위해 연구기관에 각종 줄을 대려던 게 관행이었다"며 "그러다 건축현장에서 문화재가 발견되면 시굴에서 발굴까지 1년 이상 걸리기도 해 사업이 존폐기로에 몰리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문화재 조사는 일단 지표조사를 벌여 문화재가 발견될 경우 시굴조사로 보존 및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발굴조사로 이어진다. 문화재 조사·발굴 비용을 사업자에게 전액 전가하는 것도 로비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비영리법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문화재 조사기관이 대부분 영세해 수익을 추구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비리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며 "국가나 지자체가 문화재조사기관에 재정지원을 하되 관리감독권을 갖는 방향으로 조사기관의 공공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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