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17세기는 '암흑의 세기'로 불린다. 호란으로 민생은 피폐했고 反淸(반청) 변란과 북벌론으로 정국은 요동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뭄과 냉해가 이어져 현종'숙종 치세엔 대기근이 팔도를 휩쓸었다. 먹을 게 없어 인구가 유랑하느라 세상이 뒤바뀌고 있었다. 흉흉한 민심에도 조정은 환란 수습은 뒷전이고 '禮訟'(예송) 논쟁에 골몰했다. 서인과 남인은 기해(1659), 갑인(1674)년 두 차례나 예법을 놓고 다퉜다. 말이 좋아 예법이지 실상은 권력을 놓고 두 당파가 사생결단으로 엎치락뒤치락한 게다.
실로 예법 다투느라 날 새고 관념 내세우다 해 저문 시대였다. 자연히 논쟁의 핵심에 곤궁한 백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대부들은 제 집 일도 아니면서 상복을 이리 입으라 저리 입으라 들볶아 댔다. 3년이니 1년이니, 기년복(1년)이니 대공복(9개월)이니 하는 상복의 예는 허울이었다. 상대를 찍어 누르기 위해 공연히 효종이 지차네, 宗統(종통)을 이었으니 장자네 따지고 들면서 권력만 탐한 게다. 인조의 계비이자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는 자식(효종)과 며느리(인선왕후)의 죽음에 어찌할지 몰라 마음고생이 심했겠다. 본인도 모르게 당쟁의 빌미가 된 대비의 처지가 자식보다 오래 산 이유치곤 매우 고약했다.
당시 윤선도는 상소문에서 '卑主二宗'(비주이종'임금을 낮추고 종통을 분열시킴)을 지적하며 서인이 나라의 예를 완전히 무너지게 했다고 비판했다. 송시열 등 서인은 그 상소를 임금(현종)에게 올리지도 않고 불태워 묵살했다. 입만 열면 '법도' 하면서 이런 권력남용이 없다. 17세기 조선이 300년도 훨씬 지난 지금과 판박이다. 당시 정국과 혼란한 사회상을 2008년에 오버랩시키면 깔축없다.
17세기만 암흑의 시대일까. 그때에 비하면 요즘은 한 술 더 뜬다. 여야와 좌우, 공직과 민간, 수도권과 지방이 줄곧 엇박자다. 제 논리 중한 줄만 알고 상대는 아예 '몹쓸 것' 금 그어 놓았다. 줄곧 허물만 후벼파고 너나 할 것 없이 억지 부리기 일쑤다. 하기 좋은 말로 조화와 타협은 지나가는 개도 안 물어가는 소리가 됐다. 조야가 힘을 합해도 시원찮을 판에 허구한 날 싸움박질이다. 물론 글자 한 자, 이치 하나 또박또박 따져가며 볼 일도 많다. 그런데 멀리 봐야 할 것도 돋보기를 들이대니 그 밖의 것이 보이나. 외눈박이들뿐이라 역사에서 조금도 배우고 익히지 못한 시대로 낙인찍힐 일이다.
논쟁 끝에 서인과 남인이 차례로 득세했다. 권력은 얻었지만 17세기라는 시대를 잃어버렸다. 올해 참여정부에서 MB정부로 정권이 바뀌었다. 여야 자리바꿈해 그런지 권력을 쥔 쪽이나 놓친 쪽이나 속은 시퍼렇게 벼린 칼날 같다. 사사건건 삐딱선을 타면서 18대 국회는 80일이 넘게 허송세월했다. 대운하와 쇠고기, 금강산, 종부세 문제로 들끓고 '형님'측근 게이트'로 신문 지면이 연일 지저분하다. 북한 해법과 근현대사 교과서 개정을 놓고 벌이는 좌우의 행태는 말 그대로 치킨게임이다. 좌편향 교과서를 바로잡겠다면서 완전히 우편향으로 돌려놓겠다고 한다. 대기근을 방불케 하는 금융위기에 서민은 등 터지고 숨을 꼴딱이는데도 서로 '범털'이라 떠드느라 민생 법안 보따리는 끄르지도 않았다. 제 가치와 이념을 명줄처럼 아끼는 사람들이 이리 많으니 누가 그 후예답다 하지 않겠나.
'논쟁의 진면목을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백성들 눈에 당쟁이 고상한 학문 논박이나 가치 충돌로 비쳤을까. 후하게 쳐도 정파 논리를 앞세운 도당의 무도한 당파 싸움이자 정치놀음이다. 2차 예송논쟁을 끝내면서 현종은 "신하가 되어 임금에게 박하게 하면서 누구에게 후하게 할 거냐"며 집권 서인들을 단호히 물리쳤다. 지금 이렇게 묻고 싶다. "국민과 나라에 박하게 굴면서 누구에게 후하게 할 것이냐"고. 신하가 없는 이 시대엔 그게 정치인이든 공직자, 기업인, 언론, 시민단체, 전교조 누가 됐든 말이다. 저한테 박하게 굴면 차라리 인격자 소리나 듣지. 이러다 17세기 짝 안 나란 법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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