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링컨은 내각을 짜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이 공화당의 넓이와 다양성을 발휘할 수 있는 균형의 확보였다. 여기에다 자신의 경험 부족과 후보 경선에서 자신이 물리친 쟁쟁한 政敵(정적)들의 풍부한 정치역량도 놓칠 수 없는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이 같은 구상에 따라 국무장관 윌리엄 시워드, 재무장관 새몬 체이스, 전쟁장관 에드워드 베이츠 등의 정적들이 영입됐다. 이른바 '라이벌 내각'이다.
이들은 링컨을 도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링컨의 최대 업적인 노예해방을 성취했다. 그뿐만 아니다. 8년간 국무장관으로 재직했던 시워드는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헐값에 사들이는 미국 사상 최대의 외교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링컨은 이들을 기용하면서 禮(예)와 誠(성)을 다했지만 때로는 단호하게 이들을 다스렸다. 강력한 노예해방론자였던 체이스는 링컨이 자신의 정치철학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체이스와 적대관계였던 시워드는 그의 재무장관 기용 소식에 국무장관직을 사양하겠다고 링컨을 협박했다. 그러자 링컨은 두말없이 시워드의 사의를 수용했다. 체이스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황한 시워드는 사의를 철회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경선 라이벌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으로 영입한 뒤 이명박 대통령도 링컨이 꾸린 '라이벌 내각'을 배우라는 소리가 요란하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모으라는 주문이다. 그래서 개각 때 '박근혜 몫'으로 일부 장관을 할애한다는 얘기가 나오고는 있지만 실현성 있는 얘기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한 친박 의원은 "기대도 않는다"고 했다.
라이벌 내각이 실제로는 혼란만 야기했다는 주장도 있다. 더글러스 브링클리 라이스대학 교수는 "라이벌들은 온갖 정치적 술수와 암투를 멈추지 않았다. 시워드는 링컨의 명령을 끊임없이 무시했고 은밀히 링컨 퇴진을 획책했다"고 했다. 그래서 매튜 핀커스 디킨슨대학 교수는 "링컨의 모델은 리더십 매뉴얼이 아니라 (라이벌 기용의 문제점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관계로 보아 라이벌 내각이 만들어져도 성공할지는 알 수 없다. 품어야 할 사람도 안겨야 할 사람도 상대방을 너무 불신하고 있다. 우리 정치의 그릇은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인가.
정경훈 정치부장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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