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황기 마케팅 코드 '단소경박'형 제품 인기

'쪼개고 줄여야 팔린다.'

주부 최영주(37)씨는 지난주 남편 생일을 맞아 큰 맘 먹고 정장 두벌을 선물해 줬다. 평소 홈쇼핑을 보고 점찍어 둔 정장 제품의 판매 구성이 달라진 것을 보고 주문을 했다. 최씨는 "새로 구입한 남성 정장이 전에만 해도 3벌 세트에 24만원이나 했는데 최근 2벌 세트로 10만원대로 싸게 선보여 장만하게 됐다"고 말했다.

불황을 맞아 이른바 '단소경박(短所輕薄)형' 제품들이 뜨고 있다.

비교적 고가인 대용량 세트상품은 줄여 소용량, 소포장으로 쪼개 파는 등 가격 거품을 쏙 뺀 불황 속 마케팅으로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을 감안하면 제품 가격을 올려야 할 판이지만, 차라리 양을 줄여서 팔려는 업체의 고육지책 때문이다.

직장인 김인수(39)씨도 최근 부모님 생신을 맞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보통 6개월에서 1년 분량을 판매하던 한 건강보조식품이 최근에는 3개월, 심지어 1개월 분량으로 쪼개고 나눠져 소용량, 소포장 상품으로 출시돼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다.

한 TV 홈쇼핑 건강식품 담당자는 "경기 호황기에는 제품을 더 끼워주는 대용량 상품의 매출이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지만 불황으로 인해 소포장 상품의 판매가 20%이상 늘었다"며 "건강식품은 경기에 가장 민감한 상품중 하나지만 쪼개 파는 마케팅으로 불황을 견뎌내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소매점에서도 소용량 제품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주말마다 장을 보기 위해 대형 소매점을 찾는다는 주부 이모(29)씨는 "매번 장을 보면 남편과 둘이 먹기에 남아 음식물 낭비가 심했는데 요즘 무 반쪽, 두부 반모 등 소포장 상품들이 대거 출시돼 경비를 절약할 수 있게 됐다"며 했다. 홈플러스 대구경북지역 본부 장준철 과장은 "참기름, 먹을거리, 샴푸, 이전에 없던 소량 포장 제품들의 매출이 부쩍 늘었다"며 "경기 불황 시대에 써야 할 곳에만 저렴하게 지출하려는 알뜰 소비자들의 구매 형태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구 동성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43·여)씨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3kg 한 포대에 3만원하던 멸치가 같은 가격에 무게가 2kg으로 줄어든 것을 알게 됐다. 박씨는 "포대 크기는 똑같은데 양만 줄었더라"며 "얼마나 어려웠으면 이렇게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점에서 판매되는 각종 책들도 판형이 줄거나 쪽수가 줄어드는 경향이다. 가격은 그대로 두고 책의 크기를 줄여 불황을 이기려는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서점을 찾은 대학생 이인호(22)씨는 "서점에서 예전보다 판형이 줄어든 무협지를 몇 권 샀다"며 "책값을 올리지 않은 것만해도 다행이다 싶지만, 어려운 때라는 사실을 떠올리니 씁쓸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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