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밀농업을 준비하자] ⑨한국형 정밀농업의 개발<끝>

▲ 농촌진흥청을 비롯한 국내 연구기관도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정밀농업 확산에는 소비자와 농민들의 의식 전환이 더욱 중요하다.
▲ 농촌진흥청을 비롯한 국내 연구기관도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정밀농업 확산에는 소비자와 농민들의 의식 전환이 더욱 중요하다.

1950년대 중반 체코에서 건강한 산모들이 낳은 유아 수백명의 피부가 점점 푸른색으로 변한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블루베이비(Blue Baby)병이었다.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기까지 하는 이 병의 원인은 질소성분이 지나치게 많은 식수 때문이었다. 질소는 체내 혈액에서 헤모글로빈과 결합하여 산소운반을 방해하는데 헤모글로빈이 충분한 산모는 발병률이 낮지만 태아는 적은 질소에도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처럼 질소는 식물 생장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필요 이상 과잉되면 토양 및 지하수 오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질소 비료를 너무 많이 주면 생산량도 오히려 줄어든다.

일본 교토대학 우메다 미키오 교수는 "토양과 식물 생육상태를 분석한 뒤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만 비료·농약을 처방하는 개념인 정밀농업은 결국 질소의 과학적 관리"라며 "벼농사 중심인 한국과 일본은 쌀의 안전성과 환경보호 측면에서 정밀농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친환경농업의 하나인 정밀농업이 미래 농업의 대안이라는 데 대해서는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도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정밀농업의 확산에 여러 가지 걸림돌이 많다.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토양분석과 변량시비를 할 정도로 규모가 큰 농가는 많지 않고 농업인의 컴퓨터 마인드도 아직 부족하기만 하다.

정부의 관심도 절실하다. 충남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정선옥(40) 교수는 "국내 학계에서도 21세기 초반에는 정밀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았지만 정부가 구체적인 사업을 기획하지 않으면서 열기가 조금은 식은 상태"라며 "사업단 구성, 시범단지 조성 등 중장기 기획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미국 미주리대 케네스 서더스 교수는 "정밀농업은 기술이 아니라 농업분야의 철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미국에서 정밀농업이 시작됐지만 농장 규모가 훨씬 작은 아시아 국가들은 처한 상황에 맞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처음에는 미국식 정밀농업을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일본형 정밀농업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사이타마현에 있는 농업·식품산업 기술연구기구 니시무라 요 박사는 "일본 현실에서 보면 미국식 정밀농업의 기본인 위성항법장치(GPS) 기술조차 꼭 필요한 것은 아닐 수 있다"고 했다. 항공사진으로 보면 일본의 논 크기는 미국 대농장의 한 구역에 불과할 정도로 규모가 작은 만큼 미세한 위치별 분석이 의미가 적다는 이야기였다.

농촌진흥청 이충근 박사는 "한국형 정밀농업 모델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최소 조사항목, 최소 관리단위, 변량처방 방법 등을 세분화, 차별화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에서 발달한 과수나 인삼재배 등에도 정밀농법을 적용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와 농업인의 의식 전환이다. 생산량은 유지하면서도 투입비용을 줄이고 환경을 지키는 농법인 정밀농업의 개념 인식 확산이 필요한 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정밀농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이시카와현 농업연구센터의 에이지 모리모토 박사는 "농민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처음에는 정밀농업이라는 단어도 쓰지 않았다"며 "처음부터 기술만 강조하는 접근방식은 실패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정밀농업은 분명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아직 실험실을 벗어나지 못한 단계다. 그렇다고 관행농법을 계속 고집할 수도 없다. 대구경북연구원 유병규 박사는 "정밀농업으로 대변되는 농업의 디지털화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싫든 좋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추세에 올라타기를 거부한다면 영원한 낙오자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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