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7만 시간의 공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오래 살고 싶어한다. 더러 짧은 삶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할 수만 있다면' 오래오래 살고 싶어한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長壽(장수)'는 행복한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지구 온난화처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 중 하나가 사람들의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지구촌에서도 가장 고령화 속도가 빠른 나라 중 하나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기대수명(또는 평균수명)은 79.6년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태어난 아이의 경우 남자아이는 76.1년, 여자아이는 82.7년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10년 전보다 무려 5.2년이나 늘었다. 남자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같고 여자는 0.9년 정도 길다. 나이 50줄에만 들어서도 상노인 행세를 하던 시절이 그리 오래지 않은 터에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변화다. 여하튼 지금의 65세 노인은 과거의 50대 이상으로 체력이나 정신세계가 젊다. 100세 노인이 더 이상 언론의 인터뷰 대상이 되지 않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장수 노인이 급증하면서 그 명암 또한 뚜렷해지는 분위기다. 나이를 잊은 채 열정적으로 노년의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나 하면 오래 사는 것 자체가 무거운 인생의 짐이 되어 허덕이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급속한 정보화 사회에 대한 부적응과 경제적 자립능력 부족 등으로 가난과 고독 속에 방치되거나 더러는 자식들로부터도 버림받아 죽기보다 못한 노후를 보내게도 된다. 지구촌 대표적 장수국 일본의 급증하는 노인범죄로 인한 사회문제가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모든 게 젊은이 위주로 바뀌어지면서 노인의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60세에 정년 퇴직해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남은 삶의 길이는 17만5천200시간이며 이 중 잠자고 밥 먹는 등의 일상적 시간을 제외한 자유시간은 약 7만 시간이라 한다. 그런데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은 노인들에겐 이 시간이 '7만 시간의 공포' '7만 시간의 고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번도 겪지 못했던 고령화 사회가 우리에게 만만찮은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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