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을 페트병에 담아서 판매하는 문제때문에 한동안 시끄러웠다. 지난 11월 수도법이 바뀌면서 병입 수돗물 판매가 법적으로 허용됐지만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과연 병입 수돗물을 굳이 생산·판매할 필요가 있느냐는 근본적인 문제가 미해결 상태다. 올해만 60만병(350㎖ 기준)의 병입 수돗물인 '달구벌 맑은물'을 생산한 대구시의 향후 계획을 알아봤다.
◆병입 수돗물, 어떻게 되어가나?
지난 11월 11일 정부는 지자체인 일반수도사업자와 수자원공사가 환경부 장관의 인가를 받은 뒤 수돗물을 용기에 담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수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종전 수도법상에는 대구의 '달구벌 맑은물'을 비롯해 서울의 '아리수'나 부산의 '순수' 등 지자체가 만든 수돗물을 용기에 넣어 팔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병입 수돗물 허가 방침이 알려진 뒤 반대 여론이 확산됐다. '사실상 수돗물 민영화의 초석'이라는 비난. 환경부는 "병입 수돗물은 관망과 옥내 급수관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노후관 탓에 수질이 나빠지는 문제를 없앨 수 있다. 시민들이 안전하게 마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물을 민영화시키는 조치라며 반발했고, 시민단체는 병입 수돗물 판매가 수돗물 사용의 양극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11월 14일 중국에서 서울 수돗물인 '아리수'의 상표권 등록을 출원하는 등 병입 수돗물 판매에 발빠르게 대응했지만 실제 국내에서 아리수 판매는 사실상 2010년 이후로 늦춰질 수밖에 없게 됐다. 개정 수도법에 '재처리 금지 조항'이 있기 때문. 쉽게 말해서 수도관을 통해 공급되는 물과 병입 수돗물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것. 서울의 경우, 6개 정수장에 고도정수처리시설이 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병입 수돗물에 한해 한번 더 처리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염소냄새를 없애려고 차아염소산나트륨을 첨가하고 입상활성탄으로 한번 더 걸러낸 뒤 페트병에 담고 있다. 바뀐 수도법에 따르면, 이런 재처리 과정을 거칠 수 없게 돼 있다. '아리수'는 영등포정수장이 첫 고도정수처리시설을 갖추는 2010년이 돼야 생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대구 '달구벌 맑은물', 바로 생산 가능
일단 대구에 있는 정수장 3곳 중 2곳은 고도정수처리시설을 갖추고 있다. 매곡과 두류정수장이다. 낙동강 수원을 사용하는 이곳은 과거 페놀사태 이후 전국 최초로 고도정수처리시설을 갖췄다. 운문댐 수원을 사용하는 고산정수장은 원수가 상대적으로 깨끗하기 때문에 아직 고도정수처리시설이 필요없다. 대구의 경우 '달구벌 맑은물'을 두류정수장에서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처럼 재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 생산된 수돗물을 그대로 병에 담에 생산하고 있다. 이는 수도법이 바뀌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
그렇다고 해도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는 본격적인 병입 수돗물 판매에 나설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상수도사업본부 하점수 경영부장은 "서울과 대전은 현재 수돗물을 재처리한 뒤 병입해 판매하고 있는데, 이는 자칫 시민들에게 수도관을 통해 공급하는 수돗물은 상대적으로 나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며 "대구는 이미 고도정수처리돼 나오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병입 수돗물 판매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민들의 선호도가 떨어지기 때문. 아직은 일반 먹는 샘물에 비해서 수돗물은 염소 냄새가 난다거나 맛이 없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지자체가 따로 병입 수돗물 판매망을 갖추기보다는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홍보가 이뤄진다면 그때 본격적인 판매에 나서도 늦지 않다는 판단이다. 다만 이미 생산시설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현재처럼 '달구벌 맑은물'은 생산하되 무료로 나눠주지는 않을 방침이다. 하 부장은 "개인 또는 단체가 대량 주문할 경우에 생산 원가만 받고 판매할 예정"이라며 "판매가격은 350㎖짜리 한 병 생산원가가 137원20전이어서 150원 정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대구시가 병입 수돗물의 본격적 판매를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가격 경쟁력 때문이다. 수돗물의 t당 생산단가는 561원72전. 하지만 판매단가는 이보다 싸서 t당 495원55전이다. 한 병 크기인 350㎖ 단위로 나눠보면 물값의 생산원가는 무시해도 될 만큼 저렴하다. 다만 라벨, 병값, 뚜껑, 상자 가격 때문에 병입 수돗물의 생산원가는 137원20전으로 올라간다. 원가만 받고 판매한다면 한 병당 150원꼴이기 때문에 먹는 샘물과의 경쟁에서도 유리하지만 본격적인 판매에 나설 경우, 유통망을 갖추고 판촉과 배달비용 등 부대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실제 판매시에는 가격 경쟁력이 거의 없어지게 된다. 선호도는 떨어지고 가격 경쟁력도 없다면 판매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아직은 본격적인 판매시기 못 정해
아울러 두류정수장 폐쇄 문제도 남아있다. 현재 대구시 수돗물 생산용량은 내년 9월 문을 여는 문산정수장 용량을 포함하면 연간 195만t인데 비해 사용량은 100만t에 불과하기 때문에 시설이 남아도는 형편. 따라서 대구시는 두류정수장을 폐쇄하는 문제를 내부적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이다. 다만 5년마다 용역을 통해 결정하는 '수도정비 기본계획 변경 및 수도시설 기술진단 용역 보고서'가 오는 24일 나오기 때문에 그 결과에 따라 최종 결정하게 된다. 상수도사업본부 측은 "폐쇄로 결정이 난다면 두류정수장 내 병입 수돗물 생산시설을 고산정수장으로 옮겨서 운문댐 수원의 '달구벌 맑은물'을 생산할 계획"이라며 "고산에는 고도정수처리시설이 없지만 원수가 낙동강에서 취수하는 두류정수장 쪽 원수보다 깨끗한 편이기 때문에 품질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두류정수장은 지난 2003년부터 매년 25만~30만병가량 병입 수돗물을 생산하고 있으며, 올해는 11월 말까지 57만3천여병을 생산해 55만9천여병을 공급했다.
병입 수돗물의 안전성 여부가 올 국정감사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확인 실험 결과, 대구상수도사업본부가 생산 중인 '달구벌 맑은물' 제품에서 시간이 경과할수록 소독 부산물 중 유해성이 우려되는 클로랄하이드레이트와 총트리할로메탄의 농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 것. 수질기준을 초과하지는 않았지만 서울, 대전, 부산, 인천 등 다른 도시의 제품과 비교해 타 도시의 2~5배에 달하는 소독부산물이 검출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두류정수장 오세중 소장은 "타지역은 수돗물을 재처리한 뒤 병에 넣은 것이고 대구는 고도정수처리한 수돗물을 그대로 넣었기 때문"이라며 "소독 부산물은 페트병에 넣었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지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병입 수돗물의 유통기한도 상품화에 걸림돌이 된다. 시중에 판매되는 먹는 샘물의 유통기한은 1, 2년인데 비해 병입 수돗물은 여름철 10일, 겨울철 20일 정도로 짧아서 대량 생산 후 장기 보관도 어렵다.
한 병에 3천원 가까이 하는 수입 먹는 샘물이 있는데 비해 물값만 놓고 볼 때 생산 원가 20전도 채 안 되는 병입 수돗물도 있다. 사실 수돗물과 먹는 샘물이 경쟁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게임이다. 오염되지 않은 지하 원수를 끌어올려 아무런 처리과정도 없이 병에 담아낸 먹는 샘물과 생활 오폐수 등으로 다소간 오염된 물을 화학 처리해서 생산한 수돗물은 성분상 차이를 떠나 구매 욕구 차원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돗물에 이상이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기호도의 차이가 오히려 크다.
물맛을 결정하는 요인 중 온도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대개 먹는 샘물은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판매하기 때문에 그만큼 맛이 좋게 느껴진다. 물맛이 가장 좋은 온도 수준은 4℃. 하지만 수돗물의 온도는 10~20℃다. 대구 시내 수돗물에도 차이가 난다. 운문댐과 낙동강의 6월 평균 수온은 10℃ 정도 차이가 난다. 겨울에는 운문댐 물이 상대적으로 따뜻하게 느껴지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느껴진다. 물의 끈끈한 정도를 나타내는 경도 때문에 맛의 차이가 나기도 한다. 운문댐 물을 사용하는 고산정수장 수돗물의 평균 경도는 30㎎/ℓ이지만 낙동강 원수를 쓰는 두류정수장 수돗물의 경도는 83㎎/ℓ. 경도가 30~70㎎/ℓ이면 물맛이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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