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감 후] 겨울눈 몇번 밟아보았습니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시인 김춘수님의 '꽃' 만큼 이름과 말의 유의미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시가 또 있을까요. 1930년대 학자 에드워드 사피어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사람들은 모국어라는 안경을 통해서만 세상(reality)을 인식할 수 있다고. 그의 가설을 논리적으로 밀어붙인다면, 다른 언어를 쓰는 두 족속은 결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매스컴 앞에서 제 입으로 분명히 말해 놓고서 나중에 문제가 되면 "뜻이 와전됐다" "오해였다"는 둥 식언을 일삼는 위정자들이 널린 것을 보면 그의 가설이 괜한 소리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언어는 현실에 적응할뿐만 아니라 각각의 세계관도 창조합니다. 파푸아뉴기니아에서 수렵생활을 하는 다니(Dani)족에게는 색을 칭하는 단어가 '밀리'(어둡다)와 '몰라'(밝다) 두 가지뿐입니다. 우리가 '에스키모'('날고기를 먹는 인간'이라는 뜻)로 잘못 부르는 '이뉴잇'(innuit·'사람'이라는 뜻)의 언어에서는 눈(雪)과 관련된 표현이 풍부하고 다채롭습니다. 눈과 관련된 단어가 100여개라는 주장도 있지만 부풀려진 것이고 실제로는 12개 정도가 있다는군요.

아메리카 원주민만큼 독특하고 아름다운 세계관을 담은 언어를 가진 종족도 없을 겁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친구'를 '내 슬픔을 짊어지고 가는 이'라는 정겨운 말로 부르는 사람들은 그들 말고 없겠지요. 호피족과 미크맥족의 언어에는 시제가 없습니다. 시, 분, 초와 같은 단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같은 특수성 때문에 그들은 현대인들과 전혀 다른 시간 감각을 지녔다고 합니다. 나이를 물을 때 "겨울눈을 몇번 밟아보았습니까?" 같은 표현을 쓴다니 이 얼마나 정겹습니까.

백인들은 원주민들을 가리켜 "바퀴도 만들어 쓸 줄 모르는 무식한 야만인"이라며 얕봤습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바퀴가 부드러운 대지에 생채기를 내며, 단단한 바윗길은 역으로 바퀴에 상처를 준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들은 공존에 관심을 쏟았고 세상 모든 존재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백인 정복자들의 총칼과 그들이 옮겨간 전염병에 쓰러져갔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종 청소가 자행된 곳이 히틀러 치하의 독일이나 킬링필드의 피비린내 나던 캄보디아가 아니라 세계 최대 강국 미국이라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반 고호는 나무를 일컬어 "별에 닿고자 하는 대지의 꿈"이라고 했다지요. 북미 아메리카 원주민의 한 부족은 나무를 '서 있는 사람' 혹은 '키 큰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여겼습니다. 나무를 베기 전에 그들은 춤추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꼭 필요해 나무를 베려고 합니다. 베는 동안 숲 속 다른 나무들을 잠시 잠들게 해주소서." 나무를 벤 뒤 그들은 눈썹이 휘날리도록 숲을 빠져나왔습니다. 다른 나무들이 '깨어나서' 충격을 받을까봐 그런 겁니다.

북미 최대의 원주민인 나바호족은 평생 25가지 물품만을 썼다고 합니다. 반면 요즘의 서구인들은 평균적으로 평생 1천 가지의 물품을 소비한다고 합니다. '소비를 멈출 수 없는' 인간들의 욕심을 어머니 지구가 앞으로 얼마나 더 참아줄까요. 오늘밤 대지에 귀를 기울여 보시렵니까. 지구가 아파하는 소리를.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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