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41)의 목소리에는 가슴 끝부터 짜르르 번지는 묘한 여운이 있다.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며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하는 마력. 최고의 가수, '라이브의 황제'라는 명성은 그냥 얻은 것이 아니다. 그동안 무대에 오른 것만 2천여회, 단독 공연은 1천회가 넘는다. 하지만 '황제'는 무대만 고집하지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화려한 입담도 과시하고, 아이돌그룹 '소녀시대'와 함께 노래를 하기도 한다. 이승철만큼 대중의 변화를 정확하게 읽으면서 물 흐르듯 그만의 감성을 입혀내는 가수도 찾아보기 힘들다. 부침이 잦은 가요계에서 데뷔 후 23년 동안 9장의 정규 앨범과 8장의 라이브앨범, 부활과 함께한 3장의 앨범, 드라마·영화 OST까지 꾸준히 히트곡을 내며 대중 곁에 머무는 가수는 그가 유일하다. 긴 세월만큼 풍파도 많았다. 대마초 사건과 방송정지, 톱스타와 이혼, 표절시비, 물병 투척사건, 마약 공갈 협박, 재혼까지 그가 넘어온 파도는 쓰나미 수준이다. 6일 오후 경남 창원 KBS홀에서 공연을 앞둔 이승철을 만났다. 지난해에 비해 훌쩍 날씬해진 그는 리허설을 마치고 분장 가운을 입고 있었다. 아직 분장이 안 됐다며 사진 촬영이 어렵다 했다. 인터뷰 시간도 넉넉지 않았지만 다행히 그는 달변이었고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는 데 익숙했다.
◆가족은 나를 송두리째 바꿨다
-새로 얻은 큰딸이 올해 열여섯살이죠? 사춘기 소녀가 새아버지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물론 그랬을 거예요. 아이가 굉장히 내성적이라 시간이 걸렸죠. 1년이 넘었는데 지금은 전혀 문제없는 부녀지간이 됐어요. 친아빠는 아니지만 아빠로서 해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생일이면 친구들을 불러 함께 시간을 보내고, 비가 오면 아침에 학교에 바래다 주고, 일찍 끝나면 데리러 가고요.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용돈을 모을 수 있도록 해서 사게 해주고. 그런 노력과 정성 덕분에 지금은 자랑스러운 아빠가 됐어요."
-지난해 1월 결혼을 하고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더라고요. 일을 마치면 일찍 돌아와 함께 저녁을 먹고, 아침에 아이가 학교 가는 모습을 보고. 새로 태어난 딸의 재롱도 받아주고. (모든 가치의 중심이 가족으로 바뀌었네요?) 네, 정말 좋은 것 같아요. 특히 애를 낳으면 정말 다른 상황이 돼요. 지금은 아직 갓난아기지만 조금 커서 말도 하고 걸어다니면 정말 쓰러질 것 같아요. 내가 살도 많이 쪘었는데 아내 덕분에 뺐어요."
-아내가 왜 체중 감량을 권하던가요?
"살이 찐 채로 새로 태어난 아기를 안은 모습이 너무 보기 싫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기를 안으면 브래드 피트처럼 멋있어야 되는데… 가관일 것이다. 제가 미국으로 가기 전에 미리 개인 트레이너를 구했더라고요. 운동을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11㎏을 뺐어요. 이제는 훨씬 가볍고, 몸도 모양이 나고 그렇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3년
-가수 인생 23년째인데요. 대마초, 표절시비, 악플, 물병투척 사건, 마약 택배 협박 등 참 여러 가지 풍파를 겪었죠?
"그건 우리들이 겪어야 될 과정 중 하나예요. 제가 잘못한 실수도 있을 것이고, 억울한 일에 휘말린 때도 있고요. 연예인은 다 슬기롭게 헤쳐가야 돼요. 저는 악플에 상처받는 후배들에게 그래요. '대한민국에 나 좋아서 리플 다는 사람들도 상대하기 바쁜데, 왜 싫어하는 사람 상대하냐'고. 저는 안티는 전혀 신경을 안 써요. 안티가 없을 수도 없고, 없어서도 안 되고요."
-그룹 '부활'은 가수 이승철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그냥 추억이죠. 열아홉살 때 모여서 음반 내고 2년 활동하고 헤어진 그룹이지만 제가 음악의 둥지를 틀었고, 탄생했던 곳이에요. 프로젝트 앨범을 내자고 13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서로 살아온 길이 너무나 달라서 계속 끌고 가긴 어렵더라고요. 만약 그 앨범이 그렇게 히트를 치지 않았다면 계속 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히트가 되고 서로 원하는 게 너무 많아지면서 각자 갈 길로 간거죠. (부활의 리더 김태원씨와 사이는 어떤지 물었다.) 그냥 그래요. 머쓱하죠. 좋다는 건 거짓말이고, 나쁘지도 않은 머쓱한. 서로 안부는 알지만 전화를 해본 지는 오래된 것 같아요."
-'소리쳐'뿐만 아니라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하얀새' '나 이제는' 등의 히트곡들도 표절 의혹을 받는데요. 표절 얘기가 계속 나오는 이유가 뭘까요?
"'소리쳐'는 제가 쓴 곡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나한테 그러냐고요. '소리쳐'는 '리슨 투 마이 하트'(Listen to my heart) 작곡가에게 의뢰를 했어요. 거기서 판정이 온 게 '비슷한 점은 있지만 표절은 아니다. 대신 로열티 30%를 달라' 그래서 'OK' 하고 해결했어요. 가사로 보나 곡 전체로 봤을 때 표절이 아니에요. 많이 듣다 보니 뇌리에 남아있던 비슷한 음이 나온 거지.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는 일본 그룹 카시오페아의 노래를 리메이크했다고 골백번도 더 말했어요. 그 노래가 나올 때가 일본곡 얘기는 꺼내지도 못할 때예요. 앨범 뒤에 건전가요 넣을 때잖아요. 선글라스 끼고 무대에 오르지도 못한 시절이에요. 저작권이 등록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외국곡으로 올렸어요."
-표절 의혹의 가장 큰 피해자는 가수와 제작자라는 말이죠?
"표절인 줄 모르고 녹음해서 외국 엔지니어 불러 믹싱하고, 몇억원씩 들여서 뮤직비디오 만들었는데 발매 1주일 만에 표절시비 나와서 접어야 되는 상황에서 누가 제일 큰 피해자겠어요? 제가 제일 열 받는 거예요. 만약 미리 알았으면 간단해요. 리메이크로 가면 돼요. 요즘은 인터넷으로 보면 노래 비슷한 걸 찾기 쉽지만 예전에는 어떻게 알아요. 잘 모르는 태국 가수 노래를 카피하면 가수나 제작자가 어떻게 아냐고요. 그런데 내가 왜 표절가수야. 내가 표절한 게 아니잖아요."
-오늘 공연 타이틀이 '타임머신'인데요.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데뷔 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죠.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그동안 내가 저질렀던 사건·사고를 지우고 다시 멋있게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인간이 자기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반성하고 후회하는 면들은 반드시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깨끗이 지워서 완벽한 하나의 인생을 만들고 싶은 본능이 있는 거죠."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 언제입니까?
"대마초 사건이겠죠. 그것 때문에 별의별 일이 다 있었으니까요. (제일 잘했다는 순간은 언제인지 물었다.) 고등학교 때 학교 안 가고 음악실 간 것. 생각해 보면 제일 잘한 것 같아요. 공부했으면 아마 집안에서 하는 학교에 가서 선생을 했을 거예요."
◆히트곡? 들어서 좋으면 OK
-어떤 인터뷰에서 '음반시장이 쇠락한 대신, 대중이라는 덫에 걸리지 않게 됐다'고 했는데요. 무슨 의미입니까?
"앨범을 낼 때마다 대중이 원하는 변화의 목소리를 캐치하고 거기에 부응해야 하는 상황이 있잖아요. 그런데 음반이 팔리지 않으니까 역으로 대중의 입맛에 신경을 덜 쓰게 돼요. 요즘은 다음 앨범을 준비해야 한다는 걱정도 없어요. 좋은 노래가 있으면 싱글로 내고 히트를 하고.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 삽입된 '듣고 있나요'도 불과 이틀 만에 부른 노래인데 대박이 났잖아요. 그런 식으로 나를 억누르고 있던 복잡한 상황들로부터 홀가분해진 것 같아요."
-그동안 숱한 음악적 시도를 해왔는데, 음악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는 없나요?
"싱어 송 라이터들이 겪는 문제들이 있는데…. 저는 거의 곡을 쓰지 않아요. 가사만 전문적으로 쓰죠. 또 프로듀서를 항상 신인을 기용하니까 겹치거나 그런 일이 드물어요. 저는 한번 같이 작업한 프로듀서와 두번은 안 해요. 새로운 걸 시도하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죠. 그렇게 새로운 음악을 꾸준히 시도하니까 롱런한 것 같아요."
-꾸준히 히트곡을 내는 것을 보면 대중의 감성이나 흐름을 굉장히 잘 짚어내는 것 같습니다. 비결이 뭡니까?
"의외로 단순하고 간단해요. 들어서 좋으면 좋은 거예요. 저는 음악적 장르를 고집하지도 않아요. 어떤 곡이든 좋다 싶으면 받아서 발표를 하죠. 그런 노래들의 90%가 히트를 하고요. 저는 대중가수이기 때문에 '내 음악은 이번에 이렇습니다' 하는 게 너무 싫어요.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에 맞춰서 노래를 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앨범이 좋은 거지 '내 음악이 이러니 들어라' 하는 건 대중가수가 아니잖아요."
◆언젠간 자연인으로
-국내 가수들이 대개 음반을 내고 쇼프로그램에서 홍보를 하고 빠지는 식으로 활동을 합니다. 상시적인 공연을 통해 음악 활동을 하는 경우도 많지 않고요. 이유가 뭘까요?
"방송 때문이죠.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수들이 방송 위주로 활동하는 나라예요. 가수들이 나와서 쇼프로그램에서 홍보를 하고 그걸로 유명해지면 공연과 밤업소, 행사를 뛰는 식으로 활동을 하거든요. 또 가수들이 춘천에서 콘서트를 하면 무조건 망해요. 거기에 방송사가 주최하는 강변가요제가 있잖아요. 사람들이 공짜에 너무 익숙해진 거죠. 그게 다 방송사들이 만든 거예요. 그게 결국 공연 수익과 제작비와 직결되니까 질 높은 공연이 나오기 힘들고, 사람들은 질 낮은 공연에 실망하고 돌아서는 악순환이죠. 다운로드가 세계 1위이고, 공짜 초대권이 세계 1위인 상황에서는 문화가 발전할 수 없어요."
-이승철이라는 이름이 잊혀질 거라는 불안감을 느낀 적은 없습니까?
"그런 건 없어요. 뭐랄까…. 저는 음악할 팔자로 태어났지만 그 팔자가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무대에 설 수 있고, 노래를 할 수 있다는 데 굉장히 감사하죠. 저는 언제든지 자연인으로 돌아갈 준비도 돼 있어요."
-자연인으로 돌아가면 뭘 할 건가요?
"가족들과 함께 귀농을 해서 좋은 와인을 제조하고 싶어요. 제 꿈이 '샤또 루이'(샤또는 프랑스산 와인에 붙이는 말. 루이는 이승철의 일본 활동 이름)예요. 옛날에는 제 녹음실과 음향회사를 갖는 게 꿈이었는데 두 가지 다 이뤘잖아요. 샤또 루이를 만들어서 아이와 함께 포도도 따고 농경생활을 하고 싶어요."
인터뷰 말미, "셋째는 언제?"라는 물음에 그는 "뭘 그런 걸 물어보냐"며 손을 내저었다. 옆에 있던 아내 박현정(44)씨의 들릴 듯 말 듯한 대답. "계획하는 중이죠." '라이브의 황제'의 열정적인 공연은 2008년 마지막 날 대구에서도 접할 수 있다. 이승철은 오는 31일 오후 7시, 11시 대구EXCO 컨벤션홀에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문의 1544-1555.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 루이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승철은?=1966년 서울 출생. 1985년 그룹 '부활'의 보컬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부활 1집 'Rock Will Never Die'의 수록곡 '희야'로 대중에게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1989년 솔로로 전향한 뒤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마지막 콘서트', '소녀시대' 등 줄줄이 히트곡을 내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1990년 대마초 흡입으로 구속돼 5년 간 방송출연정지를 당했고, 1995년 탤런트 강문영과 결혼했다가 2년 만에 이혼했다. 그럼에도 이후 '오늘도 난',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오직 너뿐인 나를', '열을 세어보아요', '소리쳐' 등 줄줄이 히트곡을 냈고, 화려한 무대와 빼어난 보컬로 '라이브의 황제'라는 이름도 얻었다. 2007년 사업가 박현정(44)씨와 재혼한 뒤 득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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