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태의 중국이야기] 노약자가 앉아야 버스가 출발한다

2008년 12월 9일자 베이징의 경화시보(京華時報)는 베이징시 대중교통공사가 지난 8일 노약자에 대한 서비스수준을 높이는 새로운 조치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노인카드'를 가진 만 65세 이상의 노인은 무료로 대중버스에 승차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각 노선버스들은 "노약자, 환자, 장애인, 임산부 전용좌석을 10% 이상 설치하고, 노인이 자리에 앉지 않으면 출발할 수 없다"는 규정을 필수적으로 준수해야 한다. 만약 표준에 미달하거나 위치가 잘못된 차량일 경우에는 내부수리를 다시 해야 하고, 노인들의 안전을 보장해주기 위해 노인이 승차하여 자리에 앉기 전에는 기사가 차를 출발시키지 못한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현재 베이징의 노선버스 대부분은 대략 8~10개의 노약자, 환자, 장애인, 임산부 전용좌석이 설치되어있고 색깔도 황색 또는 홍색으로 구분되어 있다. 만약 10%의 비율을 적용하여 계산하면 좌석수가 비교적 적은 보통버스는 이미 기본적으로 기준을 충족하고 있지만, 차체 길이가 14m에서 18m에 이르는 통도차(通道車, 버스 두 대를 기차처럼 연결한 노선버스, 일명 지렁이차)의 경우는 다르다. 노약자 전용좌석도 늘려야 하고, 좌석도 바꾸어야 한다. 주로 중간문으로 타고 앞, 뒷문으로 내리는 통도차는 전용좌석이 중간문에 설치되어 있어서 탈 때는 편하지만 내릴 때는 앞, 뒷문까지 가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교통공사는 좌석배치를 새로 하여 이를 시정하도록 주문했고, 버스승강장마다 노인전용 '녹색통로' 설치를 요구했다. 차량이 승강장에 진입하면 먼저 노약자가 대기하는 구역의 차문을 열어 그들을 먼저 승차시켜 자리에 앉도록 한 후 다른 차문을 열도록 했다. 휠체어를 탄 노인승객이 승차하면 승무원이 도와야 한다는 규정도 추가했다.

이러한 조치가 발표되자마자 중국여론은 끓는 기름에 물을 부은 것처럼 들끓기 시작했고, 인터넷 대화방에서는 네티즌들의 열띤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급기야 사태수습을 위해 베이징시 대중교통공사 관계자가 나서서 이러한 신규규정을 정식으로 발표한 적이 없다고 발뺌하는 해프닝까지 벌였다. 그러나 이미 문제는 공공연화 되었고, 올해 7월 쩡조우(鄭州)대중교통공사의 기사가 자리양보를 거절한 승객에게 벌금 50위안을 부과한 사건까지 거론되면서 일파만파의 여파가 일었다.

네티즌들의 이야기는 이렇다. 노약자를 위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자는 교통공사의 취지는 백번 옳다. 그러나 승객의 문화수준을 강제하려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우선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고 않고는 도덕의 문제이며 양심의 문제이다. 자발적인 자리양보는 예의범절이 있는 행위로서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만약 이를 강제하여 자발적인 양보마저 강제의 결과라고 인식하게 만든다면 사회전체의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어차피 예의도 모르고 몰지각한 것으로 여겨진다면 굳이 자리를 양보할 필요가 있는가? 둘째, 승객의 승차권 구매는 버스회사와 일정한 계약행위이다. 이론상으로 그들 모두 동등하게 좌석에 앉을 권리가 있다. 또한 계약상의 내용은 버스회사가 승객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의무를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버스운행기간 동안 교통법규나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 승객에게 기사나 다른 사람들이 이 계약이행에 관여할 권리가 없다는 의미다. 앉은 승객을 일어나게 할 권리도 없지만, 만약 버스가 출발시간이 지났는데도 몇몇의 젊은 승객들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것 때문에 운행이 지체된다면 차 가득 타고 있는 다른 승객들의 권리는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더욱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징벌'한다는 것은 실제로 어려우며, 출퇴근 시간의 경우에는 차타는 자체도 어려운 판국에 노인에게 자리를 내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네티즌의 결론은 이렇다. 결국 차량혼잡, 증체, 사회질서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는 이 규정은 노선버스회사들의 책임 떠넘기기 술책이다. 교통조건 개선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젊은이들을 도덕적 인질로 삼아 책임을 전가하려는 속셈이다. 만약 교통자원을 확보하고 차량수를 늘려 모든 사람이 앉아 갈 수 있게 한다면 노약자 전용석도 필요 없을 게다.

이제 살만하게 된 중국의 생활 이야기이다. 노약자에게 자리양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들이지만 논란거리가 된다는 것은 이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이다. 교통공사에 대한 요구, 삶의 질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동시에 도덕적 해이나 가치아노미에 빠진 중국의 모습이기도 하다. 당위의 도덕률을 법률로 강제해야 할 지경이 된 중국, 도덕과 권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중국의 법질서가 여실히 드러난다. 인위적 평등만을 좇던 사회주의 중국이 시간의 가치와 질서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자연적 순리로 회귀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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