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Kitsch)는 원래 저속하고 저급한 그림을 뜻했다.
19세기 말 중산층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그럴듯한 그림을 비꼬는 말이었다. 요즘에는 저속한 미술품, 조악한 예술과 패션 등 질 떨어지는 문화를 대표하는 말이 됐다.
그런데 저속한 키치영화에 할리우드 톱스타가 총출동하면 뭐가 될까. 할리우드 재주꾼 벤 스틸러가 각본, 감독, 주연을 맡은 영화 '트로픽 썬더'는 할리우드 엽기 코미디의 정점을 보여준다.
영화가 시작되면 CF 1편과 예고편이 이어진다. 선정적인 MTV 스타일의 광고와 질 떨어지는 저질 코미디들이다. 화려하게 채색된 컴퓨터그래픽, 우스꽝스런 액션, 제목 또한 과장된 예고편에 웃음부터 터진다. 할리우드가 양산하는 저질 코미디를 비웃으면서 일단 관객에게 아부(?)를 떤다.
액션 스타 터그(벤 스틸러)의 한계와 처지를 예고편에 묶어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는 이제 연기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손으로 수류탄을 막아 동료를 구한 베트남전의 영웅을 그린 블록버스터 전쟁영화에 출연한다. 아카데미상을 5회나 수상한 연기파 배우 커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마약중독자 코미디 배우 제프(잭 블랙) 등이 그의 동료다.
그러나 감독은 소위 스타인 이들의 등쌀과 제작자 러스(톰 크루즈)의 멸시를 받는다. 실감 넘치는 연기를 기대하며 이들을 정글 오지에 몰아넣는다. 곳곳에 부비트랩과 카메라를 설치해 실제와 다름없는 연기를 뽑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이곳은 마약 갱단들의 거점이다. 베트남전 미군으로 분장한 연기자를 진압 군인으로 오인한 갱단들이 이들을 공격하면서 영화는 실제 전쟁 속에 들어가 버린다.
영화가 실제와 오인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웃음의 기본 포커스이다. 배우들은 실제 총알이 날아다니는 상황도 영화의 한 장면이라 믿는다. 지뢰를 밟아 온몸이 부서진 감독의 시신을 헤집으며 기가 막힌 특수 분장을 얘기하고, 포탄과 총알 속에서도 영웅적 면모를 보인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컷!'을 외치고, 대사를 고치고,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서로의 연기에 대해 설왕설래한다.
'플래툰'을 비롯한 '지옥의 묵시록', '블랙호크 다운',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 빼어난 전쟁영화의 장면들을 모조리 패러디하며, 껍데기 스타가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려준다.
좌충우돌식 진행에 빠지지 않는 것이 욕설과 외설적인 농담들이다. 마약과 동성애가 넘치며 속이고 속는 할리우드 연예계를 비웃고, 스타시스템의 허점도 꼬집는다.
이 영화는 코미디영화로는 드물게 '18세 관람가' 영화이다. 성적 농담도 그렇지만, 전쟁터의 잔혹한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양손이 잘려나가고, 포탄에 맞은 배에서는 내장이 줄줄 흘러내리고, 사람의 머리를 총구에 꽂아 고함을 지른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한다. '킹콩'의 잭 블랙이 마약중독자 코미디 배우로, '아이언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흑인 병사로 나오고, '웨딩 플래너'의 매튜 맥커너히가 벤 스틸러의 매니저로, 연기파 배우 닉 놀테가 전쟁영웅담의 실존 인물로 나온다.
그러나 이 영화의 압권은 톰 크루즈이다.
미남, 호남, 쾌남 등 좋은 수식어는 다 달아줘도 모자랄 그가 '굴욕의 총아'로 출연한다. 대머리에 독설이 입에 밴 제작자, 목소리를 알아채기 전에는 도저히 톰 크루즈로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다.
'촬영 중단해!' '너는 해고야!' 등의 말을 주로 쓰는 다혈질이다. 입만 열면 과격한 육두문자가 튀어나오고, 빛나는 대머리에 살로 뭉개진 엉덩이, 축 처진 배에 인간성도 제로이다. 특히 마지막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 추는 춤은 압권이다.
'트로픽 썬더'는 할리우드를 비튼 블록버스터 블랙코미디이다. 전혀 프로답지 않은 이들이 인기를 위해 몸을 던지는 싸구려 인간들의 집단으로 그려진다. 할리우드 풍자극에 익숙한 이들은 폭소를 자아내는 영화다. 그러나 그 웃음 코드에 맞지 않으면 비릿할 수도 있다. 톰 크루즈의 망가진 모습은 놓치지 않도록. 107분. 18세 관람가.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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