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복거일의 시사 코멘트] 더 가난하게 만드는 제도

정부가 최저임금법의 내용을 조금 바꾸겠다고 발표하면서, 최저임금제가 사회적 논점으로 다시 떠올랐다. 60세가 넘은 근로자가 동의하면, 기업이 임금을 최저임금보다 10% 낮출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아울러, 정부는 수습근로자에게 최저임금보다 10% 적은 임금을 줄 수 있는 기간을 현재의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려 한다.

정부가 이처럼 최저임금제의 규정을 누그러뜨리려는 까닭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들을 원하는 근로자들이, 특히 나이 많은 근로자들이, 적지 않다는 사정이다. 최저임금을 좀 낮추어 한계적 일자리들을 살리자는 뜻이다.

정부의 제안에 대해 노동조합들과 노동운동가들은 거세게 반대한다. 최저임금제는 가장 가난한 근로자들을 보호하는 장치이므로, 그것을 누그러뜨리는 것은 그들의 이익을 저버리는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와 노동운동의 서로 다른 주장들 가운데 어느 쪽이 옳은가 선험적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의 연구는 대체로 최저임금제가 좋은 제도가 못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최저임금제는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불하는 시간당 임금의 최저 수준을 규정함으로써 근로자들의 생활 수준을 높이려는 제도다. 그것의 이론적 근거는 독점적 구매자인 기업의 착취를 없앰으로써 임금 수준과 고용 수준을 함께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시장 경제에서 특정 기업이 노동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경우는 없다. 취업이 자발적 계약으로 이루어지는 터에, 근로자가 착취를 당하는 상황이 나올 가능성도 거의 없다. 아마도 예외가 있다면,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들이 나쁜 기업가들에게 착취당하는 경우일 터이지만, 그 문제는 최저임금제와는 관련이 없다.

어느 사회에나 특별한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 맡을 수 있지만 최저임금을 보장할 수 없는 일자리들이 있다. 최저임금제가 시행되면, 그런 한계적 일자리들이 사라진다. 그런 결과 어려움을 겪는 것은 가난한 근로자들이다.

이전엔 최저임금제가 주로 기술과 경험이 적은 10대 근로자들을 겨냥해서 만들어졌다. 고령화 사회가 된 지금, 최저임금제가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가장 큰 계층은 나이 많은 근로자들이다. 그들은 임금이 적어도 일자리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성향이 짙다. 따라서 최저임금제는 분명히 나이 많은 근로자들의 복지를 줄게 된다.

최저임금의 수준을 합리적으로 정하는 것도 어렵다. 임금이 지역, 산업, 기업, 그리고 경제 상황에 따라 편차가 클 수밖에 없는데, 하나의 최저임금으로 규제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3천770원이고 내년은 4천원이므로, 최저임금의 수준이 낮은 편은 아니다. 따라서 상당한 일자리들이 최저임금제 때문에 나오지 못하거나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선의에서 나왔지만, 그른 논거에 바탕을 두었으므로, 최저임금제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제도다. 따라서 아예 없애는 것이 옳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 그것은 아주 어렵다. 이번에 정부가 그 경직된 제도를 좀 누그러뜨리려 시도한 것은 용기 있는 일이다. 반대가 거세지만, 꿋꿋이 밀고 나가서, 가난한 근로자들에게 작지만 실질적인 이익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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