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시장 문화

늘 마음의 거울로 자리하는 스님이 한 분 계셨다. 해마다 한두 번씩은 인사를 드리러 간다. 꽤 오래 전에 뵀을 때다. 암자를 오르려면 항상 힘이 들었는데, 시멘트 포장을 해놓았지 않은가. 어떤 연유로 포장을 하게 된지를 스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님의 대답이 너무도 태연하시다. 시장 보러 가기 편하기 위해서란다. 우리나라 당대 최고의 선승으로 추앙받던 분의 입에서 나온 말씀 치고는 의아하다. 그러나 이 스님의 이력을 보면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스님은 평생 동안 암자에서 왕복 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5일장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걸어 다니셨다. 시장을 가셔서 구입해 오는 물건도 특별한 것이 없다. 일반인이 보면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가까운 제자들과 보살들은 그 연유를 너무도 잘 헤아린다. 스님은 시장, 즉 세속의 모든 인간사가 함축되어 있는 저자거리를 통해 도를 깨치시는 것이다. 물론 그 분 입으로 단 한 번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은 없지만.

시장 속에 인간사가 함축되어 있다는데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우리 선조들의 삶을 한눈에 보기 딱 좋은 곳도 시장이 아닐까. 조선시대에는 정부에서 중요한 일을 백성들에게 알릴 때 항상 시장통에 방을 붙였다. 더 나아가 극형으로 다스려야 하는 죄인의 참수 현장도 시장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성삼문 묘청의 목이 시장에 걸렸고, 선죽교에서 살해된 정몽주의 머리도 옮겨져 시장에 걸려 시장 방문객들의 구경거리가 됐다.

특히 심하게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는 해에는 시장을 아예 옮겨서 열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저자거리인 시장을 선조들이 신성시했음도 알 수 있다. 이를 잘 아는 오늘날 정치인들도 시장 방문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선거철이 되면 어김없이 시장을 방문하는가 하면, 국가적으로 민심이 이반되었다는 판단이 나올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미 오늘의 시장은 옛 선조들의 터전이었던 시장과는 완전히 의미가 달라졌음을 깨닫지는 못하는 것 같다. 문화가 사라진 것이다. 시장 고유의 문화는 이미 없어지고, 오직 소비의 현장으로만 명맥을 유지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너무 극단적인 지적일까. 이제 우리는 스님처럼 시장을 통해 인간사를 깨닫던 시대는 지나 살고 있다. 소비가 문화와 접목될 때, 세상은 더 풍요로워진다는 사회학자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시장문화 복원'은 절실한 숙제다.

인간은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가르쳤던 '시장의 참 모습'이 그립다.

서동훈(대구미래대 영상광고기획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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