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斷想] 벗어부치고

이명박 대통령은 11월 17일 라디오 등을 통해 방송된 연설에서 "불이 났을 때는 하던 싸움도 멈추고 모두 함께 물을 퍼 날라야 한다."며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국가적 단합과 협력을 당부했다. 경제난국을 돌파해 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와 함께 국민 모두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때임을 국정 최고 책임자가 호소한 것이다.

"웃옷을 벗어부치고는 씩씩거리며 대들다." "2차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이탈리아 연합군이 영국군을 파죽지세로 몰아부치고 있을 때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는 점령지인 리비아의 트리폴리에 도착해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미국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강한 개성과 독립심으로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했으며 일단 결심하면 적극적으로 밀어부치는 고집이 있다."

앞서의 예시된 문장에 나오는 '벗어부치고는' '몰아부치고' '밀어부치는' 중에서 '벗어부치고는'을 제외하고는 전부 잘못된 표기이다.

'부치다'는 힘에 부치는 일이다, 편지를 부치다, 논밭을 부치다, 빈대떡을 부치다, 식목일에 부치는 글, 회의에 부치는 안건, 삼촌 집에 숙식을 부치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붙이다'는 우표를 붙이다, 책상을 벽에 붙이다, 흥정을 붙이다, 감시원을 붙이다, 조건을 붙이다, 취미를 붙이다, 별명을 붙이다 등의 뜻으로 주로 무엇에 접촉하게 하는 데 사용된다.

'부치다'와 '붙이다'에 '벗다' '밀다' '몰다' '걷다'가 붙어 하나의 단어로 굳어진 '벗어부치다' 따위에서 '-붙이다' '-부치다' 중에 어느 것을 써야 할지를 고민하는데 '벗어부치다' 외에는 '-붙이다'로 생각하면 된다. '벗어부치다'는 세차게 대들 기세로 옷을 벗다의 뜻으로 '벗어부치다(벗어젖히다)'를 '벗어붙이다(벗어제치다)'로 쓰면 잘못이다. 하나의 단어이므로 꼭 붙여 써야 한다. '밀어붙이다'("책상들을 구석 쪽으로 밀어붙이고 바닥을 닦았다.") '쏘아붙이다'("홧김에 한마디 쏘아붙였다.") '몰아붙이다'("어찌나 심하게 몰아붙이는지 꼼짝 못하고 당했다.") '걷어붙이다'("소매을 걷어붙이고 나선 결과다.")라는 것을 이제는 혼동하지 말자.

'팔을 걷어붙이다'라고 국어사전에 관용구로 등재돼 있으나 '소매를 걷어붙이다'라고 해야 적확하다. 본격적으로 어떤 일을 하려고 나서다는 뜻에서 '소매'는 저고리나 두루마기 따위 윗옷의 팔을 꿰는 부분을 말하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중앙회에서 경제 살리기 국민실천과제로 선정한 '모·아·보·자'(모으자, 아껴 쓰자, 보듬자, 자제하자의 앞 네 글자)를 함께 실천해보는 것도 지금의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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