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權力의 病

어느 나라에서든 집권자, 권력자의 친인척들, 특히 자녀와 형제들의 동정은 국민의 관심 속에 언론의 뉴스감이다. 구미 선진국에서는 이들의 실수나 일탈된 행동에 대해서는 화젯거리 정도로 여긴다. 미국의 경우 36대 린든 존슨 대통령의 동생 샘 존슨은 알코올 중독자로 술만 마시면 기자들에게 백악관에 있는 형에 관한 얘기들을 마구 떠벌려 존슨 대통령의 골치를 썩였다. 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동생으로 백수건달인 도널드 닉슨은 괴짜 사업가인 하워드 휴즈에게 돈을 빌려 햄버거 가게를 열었다가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이와 달리 친인척들이 금품수수나 청탁 등 위법행위를 했을 경우 여론은 한 치의 용서도 없었다. 역시 알코올 중독자인 지미 카터의 동생 빌리 카터는 온갖 망나니짓으로 화제를 뿌렸다. 한번은 테러행위로 미국과 단교한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로부터 22만달러를 받고 미국내 여론을 일신시키는 불법 로비 역할을 맡았다가 혼쭐이 났었다. 돈을 돌려주고 간신히 구속은 면했으나 형이 내세우는 청렴과 도덕성에 먹칠을 했다.

신군부의 리더가 되어 12·12와 5·18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전 대통령. 그는 최규하 전 대통령을 밀어내고 권좌에 올라 코미디 같은 엉터리 대통령 선거로 당선된 후 1981년 3월 3일 취임사에서 거창한 약속을 했다. 재임 중 "국민을 3대 공포로부터 해방시키겠다"고 선언한 것. 즉 전쟁과 폭력의 공포로부터, 기아와 가난의 공포로부터, 부정과 부패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며 특히 권력형 비리, 친인척 비리는 가차없이 엄단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얼마나 멋지고 시원한 약속인가.

결과는 어떠했는가. 재임 7년 6개월 동안 동생은 새마을운동회장으로 73여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형은 노량진수산시장 강탈사건 연루혐의로, 처남과 처삼촌은 부정비리 혐의로 줄줄이 구속됐다. 나중 그 자신이 7천억~8천억원의 검은돈을 모은 것 등을 합쳐 一族(일족)이 부정비리 백화점을 벌인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처사촌인 박철언씨가 슬롯머신 사건으로 구속되고 동서는 거액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는 80여억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과 3남은 이권 청탁 등으로 구속됐으며, 큰아들은 인사청탁 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이들의 부패 행진이 씩씩하게(?) 계속되고 있는 것은 한국이 그들의 분탕질에 천국이기 때문이다. 첫째 대통령이 "단 한푼도 안 받겠다" "부패는 결코 없을 것이다"라고 호언하는 동안에도 검은돈을 받았다. 둘째 유죄판결을 받아 수감된 후 1, 2년 안에 슬그머니 가석방되고 또 후임 대통령은 약속이나 한듯 사면복권해준다. 끝으로 당사자는 회개하고 반성하기는커녕 공직선거에 출마, 국회의원이 되고 당의 요직을 맡아 승승장구한다. 그럴 때마다 (이들의 비리가 드러나고, 구속되고, 사면복권된 후 활개를 칠 때마다) 분노가 끓고 화병을 앓는 것은 선량한 국민들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가 거액의 부정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 2006년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케 하는 불법로비를 벌였고 성공보수로 정화삼씨와 30여억원의 통장을 넘겨받은 뒤 나중에 3억~4억원을 받은 혐의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12월 당선 직후 "누구든지 이권이나 인사청탁을 할 경우 패가망신시키겠다"고 선언해 주목을 끌었다. 그후 재임 중 형의 이권개입설이 나올 때마다 "우리 집안에는 그런 짓을 할 만한 위인이 없다" "형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노인"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번 혐의 내용을 보면 프로급 수준이 아닌가. 그는 이밖에도 구속된 박연차 회장과의 모종의 비리연관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농협의 증권사 인수 비리가 심각할 동안 농림부, 감사원, 금융감독원, 부패방지위원회 등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도대체 권력자 인척들의 검은돈 챙기기와 이권개입, 분탕질 등 부정비리의 행진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당연히 재발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전 국민의 뜻을 받들어 여당과 야당은 하루빨리 "대통령친인척 비리 처벌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검은돈이나 뇌물의 규모와 관계없이 이권 및 인사청탁을 했을 때는 특정범죄처벌 가중법보다 10배 이상 엄벌하고 어떤 경우에도 사면이나 복권을 할 수 없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 나라는 분탕질하는 친인척들의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권력자들은 더 이상 국민들을 울리지 말라.

이성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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