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방국세청에는 최근 한 민원인이 먹다 남은 양주 한 병을 들고 왔다. '아무래도 가짜 양주인 것 같은데 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국세청 직원이 산하 기술연구소에 의뢰, 성분을 분석한 결과는 진품 양주. 민원인은 그래도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갔다. 국세청 관계자는 "올해만 이런 일이 세 차례나 있었다"며 "양주가 얼마나 신뢰를 잃었으면 이런 사람까지 있겠느냐"며 씁쓸해했다.
연말 회식·술자리 모임이 잦아지면서 가짜 양주에 불안해하는 '주당(酒黨)'들이 늘고 있다. '불황에는 가짜 양주가 더 성행한다'는 속설까지 겹치는 판국이지만 당국의 가짜 양주 단속 실적은 전무하다.
국회 기획재정위 안효대 한나라당 의원(울산)은 지난 10월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국내 양주시장 규모는 연간 1조원대인데 전체 유통량의 10% 내외가 가짜 양주로 추산된다"며 "그러나 술병, 박스, 정품라벨 등을 정교하게 위조해 식별이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내에선 2004년 이후 5년간 3억667만여병(500㎖ 기준)이 유통됐지만 적발량은 2만9천여병(0.01%)에 불과했다. 대구지방국세청 경우 2005년 6월 가짜양주 운반 차량 신고를 받아 500만원의 포상금을 준 게 유일한 단속 사례다.
양주병에 가짜 양주를 넣고 위조 마개를 부착하는 것이 주된 수법. 희석한 싸구려 위스키에 우롱차, 캐러멜 색소를 섞거나 술의 도수를 맞추기 위해 공업용 에탄올을 사용하기 때문에 마신 뒤 심한 두통 등을 호소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12일에는 서울의 한 술집에서 가짜 양주를 팔아 바가지를 씌우고 손님을 여관에 방치,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숨지게 한 업주와 종업원이 붙잡히기도 했다.
양주 위조 방지는 주류업계의 해묵은 고민. '임페리얼' 경우 '트리플(3단계) 키퍼'라는 장치를 이용, 손님이 직접 진품 여부를 알 수 있도록 했고 '윈저'는 개봉시 마개와 병을 연결하는 추(체커)가 떨어지는 '체커 장치'를 도입했다. 한 주점 업주는 "종업원이 미리 양주를 따오거나 알코올 냄새가 강하게 난다면 가짜인 것을 알 수 있지만 술에 취하면 거의 알아채지 못한다"고 했다.
국세청에서는 가짜 양주 신고시 100만~1천만원의 신고포상금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주류유통 과정이 워낙 복잡하고 위조 수법도 교묘해 적발이 어렵다.
대구지방국세청 한창욱 부가소비세과장은 "영세한 주점 등을 중심으로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워낙 수가 많아 한계가 있다"며 "업체, 국세청, 사법기관이 가짜 양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제보가 있어야 근절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탄핵 반대, 대통령을 지키자"…거리 정치 나선 2030세대 눈길
젊은 보수들, 왜 광장으로 나섰나…전문가 분석은?
민주, '尹 40%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에 "고발 추진"
윤 대통령 지지율 40%에 "자유민주주의자의 염원" JK 김동욱 발언
"尹 영장재집행 막자" 與 의원들 새벽부터 관저 앞 집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