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275명 '강도'와 5명의 '깡패'

국회의원 폭력은 명백한 잘못/정당은 국민 신뢰 얻기가 우선

자유당 시절, 유도 선수 출신의 여당 후보와 서양화가 출신의 선비 같은 야당 후보가 대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맞붙었다.

유도 6단의 신모 후보가 먼저 연단에 오르자마자 굵은 팔뚝을 흔들며 외쳤다. '저를 국회로 보내주면 내 이 힘으로 휩쓸겠습니다.' 열정적으로 의정활동을 해내겠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그러자 이어서 등단한 자그만 체구의 서모 후보가 차분한 목소리로 응대했다. '국회 일이 완력과 힘으로만 하는 거라면 차라리 저 사람 대신 뿔난 황소를 두어 마리 갖다 두는 게 더 낫지요.'

선거결과는 황소론으로 비폭력 정치를 표방한 서 후보의 승리였다.

훗날 자유당 독재정권은 끝내 四捨五入(사사오입) 등 폭력 국회를 몰아가다 자멸했지만 그런 신생 한국의 민주주의를 두고 '쓰레기통에 장미꽃이 피는 것'에 비유했던 것도 50년대 그 무렵이었다.

갓 독립한 한국이 의회 제도를 모방해 민주주의를 떠들지만 선진화된 참민주주의를 하기에는 한참 모자란 민족이란 비하가 담긴 비유였다.

어제 오늘 우리 국회를 보고 있으면 그 낯 뜨거운 비유가 어쩌면 '부채도사'의 족집게 점괘 같다는 느낌이 든다.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스스로 '깡패'라고 공공연히 큰소리치고 상대방 국회의원들은 '강도'로 몰아치는 세상이니 말이다.

여의도가 '말죽거리'도 아니고 불 켜진 심야 의사당 밤하늘이 '신라의 달밤'도 아닐 텐데 오가는 언어와 품행에는 온통 폭력뿐이다. 단 5명의 '깡패'가 275명의 '강도'들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동안 민생이 걸린 화급한 예산안 처리가 며칠씩 늦어지고 의사일정은 수시로 마비된 게 요 며칠 사이 국회의 모습이었다. 자칭 깡패도 그렇지만 275명이 5명을 설득해 내지도, 누르지도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닌 '강도'들의 자질과 협상력도 장미꽃을 피우기에는 한참 모자랐다.

민주 의회 제도를 본뜬 지 반세기가 지난 21세기에 '깡패' 다섯 명 앞에 국회 의사일정이 휘둘리는 폭력적인 국회로 전락된 모습을 보며 50년 전 황소 두어 마리 갖다 두는 게 낫겠다던 낭만이 차라리 부러워진다.

민노당이 지닌 당론은 비록 소수 의석이라 해도 그 나름대로 존중돼야 하고 야당으로서의 당론 관철 노력은 의회활동의 권리고 의무다. 싫든 좋든 그게 의회 민주주의다. 국민들의 몇 %가 공감하고 동조하느냐는 것은 별개다. 그러나 특정 법안에 대한 반대나 관철 의지는 인정하되 방법에서의 과격함과 폭력은 어떤 정치적 명분에도 배격돼야 할 명백한 잘못이다.

의회에서의 당론 관철이 그토록 절실했다면 자청해 깡패가 되기 전에 국민의 신뢰부터 얻어 의석을 늘리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의 순리다. 신뢰는 5석밖에 못 얻어내고 행세는 100석짜리로 하려 드니 과격한 억지와 폭력이 나오게 된다. 의석만 늘리면 깡패가 되지 않고도 원하는 법안을 통과도 시키고, 막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요 며칠 새 그런 순리와 이성은 제친 채 몸으로 보여준 '깡패' 역할은 단 5석밖에 주지 않았던 국민들의 정서와 신뢰를 더 갉아먹고 과거 민노당이 보여 왔던 투쟁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만 더 덧칠했다. 더구나 국회의원도 아닌 보좌관, 당직자들까지 폭력 점거에 끼어들었다. 그런 식의 의회투쟁이 용인되고 번지게 되면 나중엔 평당원, 친노 단체, 촛불시위 단체까지 국회 속으로 뛰어들게 돼 폭력정치만 남고 의회정치는 실종된다. 이 총체적 경제난국 속에서 과연 몇 사람의 국민들이 국회 안에 강도와 깡패들이 득실거리는 걸 원할 것인가?

강도소리 들은 한나라당도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절대다수 의석을 주고 명색 경제 대통령까지 붙여준 것은 민생도 제때 못 챙긴 채 소수 야당에게 떠밀리고 자빠지기만 하는 물러터진 여당 되라고 뽑아준 게 아니다. 차떼기만 할 줄 알았지 172석이라는 떼거리 몸값은 제대로 못하니 깡패가 나서는 것이다. 강도로까지 비하당하는 수모도 다 자업자득이다.

장미꽃을 피우기는커녕 강도와 깡패소리로 쓰레기통이 된 듯한 국회를 보며 속 뒤집힌 국민들은 이렇게 물을 것 같다.

'당신네들 국회의원 맞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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