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경제가 엉망이라지만 그래도 한 해를 속절없이 그냥 보낼 수는 없는 법. 가는 해를 아쉬워하는 송년 모임들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조촐하게나마 술 한두 잔씩 건네며 정담만큼은 푸짐하게 나누는 자리다. 비록 올해는 와인 대신 맥주로, 맥주 대신 소주로 주종의 급수가 낮아지고는 있지만….
연말 술자리에서는 갖가지 건배사가 넘쳐난다. 세계 어느 사회에서나 술자리 건배사는 있게 마련이다. 대개는 서로의 건강과 행복, 축복을 기원하는 내용인데 종류가 의외로 단순하다. 영미권에서는 '치어스'나 '토스트' 정도이고, '술잔을 비우라'는 의미에서 일본은 '간빠이(乾杯)', 중국에선 '간뻬이(干杯)'가 널리 사용된다.
반면 우리네 건배사는 퍽 다채롭다. 그것도 매년 신메뉴가 탄생되고 기존의 것들도 더 재미있는 내용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등 계속 진화하고 있다.
건배사는 모임의 분위기를 돋우는 양념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송년 모임 같은 자리에서 건배 제의자가 "에~ 또~" 식으로 서두를 꺼낸다면 좌중은 이내 시들한 표정이 돼버린다. 건배사의 미덕은 짧으면서 재치와 위트, 익살스러움이 넘쳐야 한다.
가장 대중적으로 애용되는 건배사는 역시 '위하여'이다. 여기서 여러 개가 갈라져 나왔다.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 '개나발'(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나가자'(나라와 가정, 자신을 위하여), '진달래'(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에겐 '나이아가라'가 제격 아닐까. '나이야'~'가라'라고 외칠 때 곧 한 살 더 먹게 될 나이도 별것 아니게 여겨진다. 한때 유행했던 '구구팔팔'(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의 경우 잘못 사용하다간 큰코다칠 수도 있으니 주의할 일이다. 노익장 어르신들께서 "에끼, 고것밖에 살지 말란 말이냐"며 섭섭해 하실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익살과 외설을 절묘하게 버무린 건배사들도 있다. 다소 위태롭긴 하지만 이런 종류일수록 좌중을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경제 위기 탓일까,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건배사는 '위기를~ 기회로'이다. '危機(위기)'라는 글자 자체에 '위태로움'과 '기회'가 함께 들어 있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멋진 건배사는 핍진한 일상에 윤활유가 된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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