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야 놀자] '미네르바' 신드롬

'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이 배출한 스타 '미네르바'는 하나의 사이버 공간을 넘어 현실 공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등 사회적 신드롬을 몰고 왔다. 미디어가 미네르바에 대해서 대서특필하고, 그가 추천한 책 중 하나인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석 달 사이에 1만부 정도가 팔렸다고 한다. 물론 그가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환율 급등을 노스트라다무스처럼 예언해서 적중한 것은 사실이고, 그의 글에서 인용하는 정보들이 설득력 있게 들리기는 한다. 그렇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30만명 내외가 그의 글을 읽고 환호하며 인터넷 경제대통령으로 추앙받는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은 그가 제시한 사실들이 퍼즐을 끼워 맞추듯 현실에서 완성돼 가는 것 이상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네티즌들은 무지몽매한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판단 근거를 마련해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미네르바의 글만으로 신드롬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므로 경제주체들의 사고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고전파 경제이론은 모든 경제주체가 합리적으로 사고한다는 기본 가정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사고한다'는 명제는 경제학에서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인간이 언제나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자신의 사고과정을 반추해 봤을 때, 자신 있게 'Yes'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합리성'이라는 가정이 현실과 거리가 있음을 알면서도 선뜻 포기하기 꺼려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경제학계 일각에서는 합리성의 가정을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경제학에 심리학을 가미한 '행태경제이론'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신성불가침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경제학의 핵심적 가정을 재검증의 도마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행태경제학자들이 제기한 인간의 비합리적 행태 성향 중 몇 가지를 골라서 설명해 보면, 첫째, 사람들은 객관적 통계 수치보다는 단순화시켜 주변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하고 이에 기초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 예가 바로 'heuristics(주먹구구)' 의사결정 방식이다. 예를 들어 심장마비 발병 위험을 평가할 때, 객관적 통계자료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심장마비가 발병한 사례를 기억에 떠올리고 판단을 내린다는 식이다.

둘째, 사람들은 최종적인 결과가 아니라 변화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즉 결과보다는 준거점을 설정해 놓고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셋째, 사람들은 이익보다 손실에 대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태도, 즉 손실기피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합리적으로 사고한다면 이익과 손실에 대해 똑같이 낮은 확률이 주어졌을 때, 매번 같은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당첨될 확률이 지극히 낮은 복권을 구입하는 행위는 이득에 대해 위험선호적인 태도이고, 발생 가능성이 매우 낮은 사고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는 행위는 손실에 대한 위험기피적인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지금 경제상황을 형태경제학에 적용시켜 보면, '버블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해 아파트 값이 일부 지역 기준으로 2006년 최고 거래가 대비 40% 이상 하락했다. 게다가 아파트 구입 때 받은 대출의 이자율이 계속 오르고 있고, 환율까지 IMF때처럼 급등했다. 펀드 광풍으로 가계마다 펀드 하나쯤은 모두 갖게 되었는데, 코스피 지수의 급락으로 반값 펀드는 양반이 되어버렸다. 경제 주체들은 뉴스에서 발표되는 객관적 수치보다 자신이 체감할 수 있는 개인적 자료를 확인해 보면서 경제 상황을 판단하게 된다. 또 올해 초 미국, 영국 등의 각국 정상의 신년사가 '미국발 경제 위기의 파장이 심각할 것이다'였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코스피 지수 3000, 임기말 5000 돌파'였다. 경제주체들이 결과보다 급락 과정에 더 큰 충격을 받게 되는데 이 모든 변화를 1년 안에 겪은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이득에 대해 취하는 태도와 경제적 손실에 대해 취하는 태도가 비대칭적이므로 미네르바의 비관적 예견이 경제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더욱 더 끌리게 되는 것이다.

미네르바는 '국가가 침묵을 명했다'며 절필을 선언했다. 타인을 명예훼손으로 사회적 매장을 한 것도 아닌데, 굳이 그의 신분을 밝혀내려는 시도는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 면에서도 합리적인 사고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간 본성의 저변에 깔려있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10년 뒤에 돌아오겠다며 사라진 미네르바가 누군지 궁금하긴 하다.

박경원(대구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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