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西區는 독서 중

학창시절 친구들과 떠들기를 좋아했다. 하도 떠들어대니 선생님은 이렇게 나무라곤 하셨다.

"너희가 한달만에 만났냐? 일년만에 만났냐? 허구한 날 만나는 놈들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으냐?"

매일 만나는 친구끼리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았을까? 그러나 생각해 보면 허구한 날 만나니까 할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다. 일년에 한 번, 십 년에 한 번 만나는 사이에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다. 사연이 없어서가 아니라 '공유'하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아무리 열 올리며 이야기해도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에는 맞장구치지 않는다. 이런 대화는 곧 끝난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이 책을 많이 읽기를 바란다. 자신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서도 아이들에게는 책 읽을 것을 요구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강권에 못 이겨 책을 읽는다. 그러나 초등학교 고학년쯤만 되면 학교 공부 외에는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다.

부모가 함께 책을 읽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매일 만나는 친구들끼리 할 이야기가 많듯 부모와 함께 책을 읽는 아이들은 책을 가운데 놓고 할 이야기가 많다. 부모가 책을 읽지 않는 경우 이야기할 상대가 없고, 그래서 입을 닫아버린다(책장을 덮어버린다). 아직 어린 아이들은 책과 대화하기보다 책을 읽고 사람과 대화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나쁜 영향은 또 있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는 과정을 '어른의 행동을 흉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부모의 독서권유를 뿌리칠 즈음의 아이들은 슬슬 어른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저희끼리 노래방엘 가거나 숨어서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어른이 되기 바쁜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는 과정'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부모들처럼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부모가 아무리 짓눌러도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어른인 부모가 책을 읽지 않듯 아이들도 책을 읽지 않는다. 좀 자란 아이들이 자신이 어른임을 증명하는 것은 '책'이 아니라 '담배'이기 때문이다.

문화관광부가 실시한 2007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2명은 1년 동안 한 권의 책도 안 읽었다고 한다.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 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책을 안 읽는 사람들도 하루에 1시간 이상 TV를 시청한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을 리 없다. 무엇보다 어른들이 책을 읽는 것은 '아이들을 읽게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적용된다.

최근 대구 서부도서관이 '서구는 독서 중'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에 나섰다. 박범신의 소설 '촐라체'를 '한 도시 한 책 읽기' 도서로 선정, 작가와 만남도 가졌다. 시민들이 스스로 21개 북클럽을 만들어 같은 책을 읽고 토론도 펼치고 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서구 주민들은 책을 읽자'는 것이다. 이 운동이 성공을 거둔다면 서구는 달라 질 것이다. 책 읽는 사람과 안 읽는 사람이 다르듯, 책 읽는 서구와 안 읽는 서구는 다를 수밖에 없다.

서구의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이 서구를 넘어 대구로, 대구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세계에서 가장 책 많이 읽는 대한민국, 풍요로울 것이다.

조두진 문화부차장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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