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都公 영구임대아파트 '보증금 폭탄'

대구 수성구 범물동 용지아파트에 사는 김모(67)씨는 지난 13일 대구도시공사로부터 한 장의 고지서를 받았다. 연말까지 보증금 110만3천원을 더 내야 하고, 내년부터는 월 임대료도 8만2천600원에서 9만9천100원으로 오른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아들 둘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권자 지정을 못 받았지만 싼 임대료만 믿고 일반 청약자로 입주했다. 김씨는 "자식들과 제대로 연락도 안 되는 처지"라며 "이런 형편에 보증금을 한꺼번에 100만원 넘게 올리면 어쩌란 말이냐"고 하소연했다.

영구임대아파트 저소득층 입주민들이 갑작스런 임대 보증금 인상으로 인해 더 추운 겨울을 나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들은 김씨처럼 기초수급가정 못잖게 형편이 딱한 차상위 계층들이 대부분으로, 저소득층의 살림살이 안정을 최우선 과제를 삼겠다고 발표한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발표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15일 대구도시공사에 따르면 도공이 관리하는 영구임대아파트는 지산, 남산, 신암, 범물, 상인 등 모두 5개 단지. 전체 6천800가구 가운데 1천153가구(16%)가 이번에 보증금 인상 '폭탄'을 맞게 된 일반 청약자다. 가장 작은 39.6㎡(12평)에서부터 62.7㎡(19평)까지 최소 72만원에서 최대 110만원까지 보증금을 더 내야 한다.

도공 측은 이번 보증금 인상이 2005년 12월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국민임대주택의표준임대금 및 표준임대료' 개정 고시에 따라 이미 충분히 알린 내용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도공 관계자는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일반 청약자와 격년으로 재계약할 때마다 20%씩 보증금과 월임대료를 인상하라는 지침이었다"며 "수년째 입주 대기중인 기초수급권자만 해도 대구에 470여가구나 되기 때문에 보증금을 인상해서라도 일반 청약자를 줄여나가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영구임대아파트를 관리 중인 대한주택공사도 국토해양부 지침을 근거로 올 초 대구 전체 1만1천944가구 가운데 일반 청약자 가구의 보증금과 임대료를 올린 바 있다.

그러나 일반 청약 입주민들은 관련 규정상 인상이 불가피하다지만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어려운 형편에 과중한 부담이라며 대책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이달 초 보증금 인상 고지서를 받았다는 정모(46·여)씨도 시름에 잠겨 있다. 39.6㎡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정씨는 혼자 벌어 근근이 자식을 키우고 있는데 이번에 70여만원의 보증금과 매월 임대료 1만원씩을 더 내야 한다. 김씨는 "식당 허드렛일을 하며 월 80만원을 받으며 사는데 기초수급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일반 청약자라고 다 여유있는 것은 아니다"며 한숨을 쉬었다.

범물동 용지아파트의 임차인 대표들은 "저소득 일반청약자 경우 기초수급 가정보다 더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다"며 "대기중인 기초수급자가 많다면 임대아파트 공급을 늘려야지 보증금을 올려서 일반 청약자들을 쫓아내는 게 맞느냐"며 대책을 촉구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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